수상한 하루
이나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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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던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우연하게도 저자인 이나미와는 동갑내기여서 반갑기도 하거니와 그녀의 글속에 녹아있는

시간들은 내가 지나온 시간들과 같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가 '엄희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번데기 냄새 고소한 만화방에 앉아 엄희자의 순정만화를 읽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준
그녀의 글들이 옛친구의 방문처럼 반갑다.



아홉개의 퍼즐들은 낯설지 않은 조각들이고 내마음에 쌓아둔 시간들을 닮은 조각들이다.

'집게와 말미잘'에서의 사내는 질곡의 시간들을 겪고 잠시 성공을 꿈꾸었지만 결국 누구든지

건들여 주기만 하면 화끈하게 손좀 봐주고 싶어 근질거리는 막가파 남자가 되었다.

과연 선하기만 한 인간이 있던가. 거친 삶은 결국 숨겨져 있던 '악'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가끔 얽혀있는 삶의 타래들이 버거워질때..슬며시 고개를 드는 본능을 누르는 일들이

힘겹다.  사이버세상에 낭만고양이 제이슨과 세헤라자데처럼 새로운 나를 앞세워두고

비겁한 나는 몰래 숨어서 즐기고 싶어진다. 때로는 나도 그사내처럼 파랗게 날이 선 칼을

갈면서 얽힌 삶의 타래들과 비겁한 인간들을 손봐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사내가 무섭지 않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라이벌같기도 하고 키득거리며 과자를

나누어먹는 친구같기도 한 어머니들의 모습은 결국 내가 거쳐가야할 미래의 모습이거늘..

왜 그리 치열하게 다투며 지나왔을까. 희끗희끗 머리가 희어지고 나서야 '꼭 너 닮은 딸하나..'

낳아보고 나서야 알게되는 것일까.

때로는 우군처럼 손을 맞잡다가도 적군처럼 치열해지는 엄마와 딸의 모습들도 결국 우리집풍경이었다.

 

인간의 가장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숭고하기도 하다. 뼈에게 죄를 물을수 없다는 말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마음에 평안을 준다. 남과 북을 가르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과 이데올로기도

죽음의 저편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것을...산자들은 죽은자를 놓고 여전히 전쟁중이다.

 

물기 머금은 지하셋방과 햇살을 피해 숨을곳도 없는 옥탑방에서의 배고픔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같은

시대를 지나온 동무로서 말공부하고 말공부로 풀어먹는 사람이 된것 같아 대견하기만  한 저자의 아홉개의

퍼즐조각들은 고단한 시대를 같이한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안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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