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난다'라는 말이 있다. 반도의 길목에 자리잡은 우리민족의 땅덩어리는 무수히도 짓밟혔고 다행히도 살아남았다. 그중 가장 참혹했던 임진왜란중에 빛났던 영웅들이 있었으니 이순신과 권율과 같은 장수 뿐아니라 마땅히 산에서 성불하고자 했던 승려들도 칼고 창을 들고 싸웠음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하긴 살아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살생을 금하는 승려가 전장에 뛰쳐나와야 했던 현실을 이해못하고 더욱 산으로 들어갔던 승력도 있었음을 탓할 수는 없을것이다. 스승인 서산대사와 함께 왜구를 물리친 유정 사명대사가 왜란이 끝나고 6년후에 벌인 또다른 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얼핏 제목으로만 보면 대승이신 사명대사가 무슨 사심이라도 있어 정탐을 벌인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이의 10만양병설까지 묵살하고 느긋했던 선조와 조선의 조정으로서는 된통 혼이난 후에 혹시나 하는 염려는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계속된 정쟁에 인재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그나마의 인물들도 별로 남지 않은 조선으로서는 비록 산으로 내쫓긴 승려이기는 하나 큰스님 유정만한 사신이 없었을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정치와는 무관하게 덕을 쌓은 승려인데다 왜구를 벌벌 떨게했던 승군대장으로서의 유정이라면 일본으로서도 딱히 시비를 걸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을테니 말이다. 과연 산속에서 정토의 세계를 추구해야 옳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라와 민족이 없는 정토가 무슨의미이겠는가. 나는 유정의 이런 합리성이 좋다. 어려서 불을 때는 방안에서도 이불을 쓰고 덜덜 떨고 있었다는 신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고 큰스님으로서 법문으로 대중을 감화시켜서도 아니고...불(佛)을 억압한 유(儒)까지도 섭렵하고 껴안고 교류하고 터득해버린 그의 영민함과 인간의 마음과 시대를 뒤흔드는 그어떤 사상에도 휩쓸리지 않는 담대함이 좋았다. 물론 그의 이런 담대함은 자신을 극복하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만이 가능한 이야기일테지만. '유학이 칼로 세운 일본의 죄를 씻어줄 학문이기는 하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면 그역시 칼의 학문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323p 성리학을 숭상했던 유교국가 조선이 끝없는 당쟁의 피바람속에서 서로를 할퀴고 죽어간 인물들이 진즉 이 말을 새겼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참으로 한심한 왕들로 인해 우리민족들은 억울한 일을 수없이 당했다. 인조도 그러했고 선조도 그러했고.. 그나마 훌륭한 참모들로 인해 나라를 구했건만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그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내치는 군주의 모습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후의 비참한 상황에서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 채 적국으로 향해야 했던 노구의 유정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과연 일본이 더이상 조선을 침범치 않겠다는 약조는 받아낼 수 있을까. 전과에 대한 뉘우침보다 얼른 교류나 해보자고 달려드는 일본의 영약함을 어떻게 깨닫게 하고 해답을 얻을 것인가. '일본인들은 우선 겉으로는 상대를 받아들이고 또 자기 뜻도 분명하게 밝힙니다. 일본 사람들이 말을 아끼고 한 번 뱉은 말은 끝까지 지키려는 습성이 붙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진짜 서로 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아니면 섣불리 본심을 드러내지 않지요. 이점 일본인들을 상대할 때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합니다.' -180p 일본인의 근성을 제대로 설명한 말이다. 절대 그들의 친절에 맘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결국 그들의 야욕은 후대에 이빨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왜구에게 끌려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쇼군인 도쿠카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침략국 일본을 질책하고 그에 합당한 해법을 제시한 큰스님의 위엄이 그대로 느껴진다. 글을 아는 인물도 드물었다는 왜국에게 남겼다는 그의 글은 지금도 우리 삶의 지표가 되어 마땅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어도 홀로 깬 사람이 되어라!'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 우리의 무고한 백성과 무수한 재물을 빼앗아간 침략국의 지휘자들을 설득해서 포로 3천의 송환을 약속받아온 유정을 존재를 깨우기 위해 수년간 자료를 모으고 살려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