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침묵의 시간

침묵의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더욱 애틋하고 바래지 않은 사진처럼 언제나 영롱하다.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사랑이란 영속성이 없기때문일것이다.

누구나 때묻지 않은 첫사랑이 있을것이다. 준비도 없이 계산도 없이 어느날 찾아들어

미처 익숙할 겨를도 없이 온마음을 차지하는것...그리고 대개 그사랑은 인생의 가장 빛나던

시간속에 묻혀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은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몸과 영혼이 늙고 병들어도 멈추어진 시간속에 있던 그 추억은 나를 젊고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이끌어주는 피터팬의 웬디와도 같이 영원히 늙지않는 요정으로 내삶에 숨어있는 것이다.

사막속의 우물처럼...침묵으로...

발트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 13학년 학생인 크리스티안과 영어선생님인 슈텔라의

아름다운 사랑이 시작된다. 물론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금단의 사랑이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예정없이 어느날 창문으로 불어들어온 미풍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더 애절하고 처연하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 바람이 자신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창문을 닫을 생각을 미처 못했다는 것을..

연상의 여선생을 사랑하는 일이 죽을 만큼 큰죄였을까?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사랑처럼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은 것도 폭풍이 치던 어느날 방파제에 부딪혀 슈텔라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갑자기 막을 내렸다.

감미로운 봄날의 햇살아래 이제막 뿌리를 내리고 여린 순이 막 땅위에 머리만을 내밀었을뿐이었는데 

어이없게 내린 4월의 눈때문에 얼어버린 새싹처럼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다.

남겨진 크리스티안은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이사랑을 어딘가에 가슴어딘가에 묻어놓고

평생 꺼내보며 살게 될것이다. 저자가 원했던것이 이런것이었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다.

‘시간’이라는 놈의 변덕 때문에 사랑이 식는것이라면 그 시간을 중지시키는 방법으로 영원하게 하는것!

 절정의 순간에 사랑을 끝냄으로써 그 절정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다면 이작품으로

그는 완벽하게 그 소원을 이룬 셈이다. 비록 크리스티안의 상처뿐인 사랑이 제물로 바쳐지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