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한 교수의 딸에게 쓰는 편지
왕상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완고하고 권위있는 가장의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이책을 읽는내내 내 아버지가 만약 나에게 이런 편지를 써주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훨씬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캔디빠빠라고까지 표현되는 요즘 아빠들은 양육과

가사에도 적극적이고 아이들과 교감에도 열심인 모양이다.

하지만 저자인 왕교수님은 그닥 캔디빠빠라고 할수도 없는 세대의 사람이다.

사진으로만 보면 근엄하기까지 하여 도무지 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편지를 딸들에게 남길수

있는 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세대가 거의 그러하듯 암울하고 답답한 시대를 거쳤고 청매라는 법명과 계를 받고 상좌를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가진 법대교수이다. 마흔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한

귀여운 딸 둘을 두고 있는 늦깎이 아빠이기도 하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지만 특히 늦은 나이에 얻은 딸들이 얼마나 예쁘고 소중할까마는 한때는 출가를

결심할만큼 결혼과는 인연이 없어보이던 그의 과거사를 보면 아비와 자식으로 만난 이 소중한 인연이

그에게 어떻게 남다를지...짐작이 된다.

 



 

효녀랍시고 부모가 주신 몸을 상하게 함으로써 부모를 아프게 하지 말아라. 물론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희생은 아름다울수도 있지만 차라리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孝라고 일러준다.

현모양처가 그저 시집가서 노력없이 대충 애나 낳고 살겠다는 게으름이라면 그건 꿈이될수 없다고..

부모가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꿈...그리고 남의 꿈까지 소중하게 여겨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뭐가 되고 싶었을까. 대개가 그저 학교졸업하고 좋은직장 구해 다니다가 조건 좋은 상대만나 결혼하고

좋은 집과 안락한 삶을 살겠다는 막연함속에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아빠가 내게 이런말을 해주었더라면 나는 좀더 구체적이고 의미있는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했을지도

몰랐을텐데..물론, 지금 이삶이 아무 의미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어려서 부터 설계된 삶을 향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얼마전 시한부 삶으로 죽어가는 엄마가 자라날 아이를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을 본적이 있다.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배달되도록 지인에게 부탁을 한 그 편지에는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할 상황에 대한

조언과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고통을 편지로서 위로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엄마처럼 나도 편지를 써야겠구나..

했었다. 도시락편지니..쪽지편지니 하는 엄마의 사랑이 전해지는 편지들이 유명세를 탄적도 있는데 나도

이렇게 아이와 소통하면 내 아이가 좀더 풍성한 감성을 가지고 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하지만 난 아직도 간단한 메모나 카드이외에 아이에게 이런 편지들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10대, 20대..30대..심지어 중년의 40대의 딸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은 넘치고 넘친다.

아버지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은적이 없단다. 언제라도 내 어깨에 기대렴..하는 저자의 사랑에 콧날이 시큰해온다.

하긴...부모의 존재는..특히 이렇게 늘 등불을 켜고 자식의 앞날을 비쳐주고 싶어하는 부모라면 평생 내곁에

계셔주길 바라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전 우리곁을 떠나신 법정스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 주례사로 선언한 저자의 결혼식 주례사에서

'한달에 산문집을 2권 읽고 시집1권을 꼭 읽으십시오'하셨다던데..아마 저자가 이책에 남긴 수많은 당부와

나침반 같은 지침서는 많은 독서와 성찰로 얻어진 지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우등생이었던 저자야 공부좀 잘해라..해도 대들 사람이 없겠지만 수학소리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은 나는

아이에게 수학을 잘하라는 말도 미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지 못하니 좋은 취미로 평생 친구로 삼으라는 말도

차마 꺼낼 수가 없다. 그냥 내가 못해봤더니 아쉽더라..너라도 해주었으면 어떻겠니..정도라면 모를까.

저자의 너무도 완벽한 주문에 주눅들지만 조금 위안이 된다면 '엄마의 잔소리'에 써놓은 tip이다.

'아빠의 말에 기본적으로 공감하지만, 그리고 아빠도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면서 꼼꼼함과 세심함을 당부하는 글에 엄마처럼 덜렁거려도 나름 장점도 있어...한다든지 마마걸이 되어서는

안돼 하는 글에서는 엄마가 쉬는 날에 맘껏 응석 부려도 돼...해준다. 난 이글이 더 맘에 든다.

 

"완벽 아빠, 나는 틈이 많고 결점이 많은 엄마라구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건 자신이 없다니까요."

하고 도망치고 싶을만큼 저자의 인생지침서는 너무 완벽하다. 태권도에 악기연주에 봉사활동까지..

와 이건 나도 못하겠다. 아빠가 너무 욕심이 많은건 아닌가요?

 

저자가 제일 좋아한다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보다 꽃미남 브로마이드가 더 좋은것도 취미생활이 맞긴 하니까..웃지마시길...

 

가족 기념일에 한 상 가득 차려놓은 식탁에서 아내와 처량하게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는 불쌍한 아비는 되기

싫다고 절대 질투를 숨기지 않겠다고 흥분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웃음이 터지고 만다.

어느 부모가 이렇게 될까봐 조바심이 없을까마는 아직 어린 두딸에게 다짐을 받아두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근엄한 얼굴뒤에 감춰진 어쩔수 없는 고슴도치 아빠의 모습이 느껴진다.

 

왕교수의 딸들아. 아니 우리 모두의 딸들아. 이렇게 살면 더없이 좋겠지만 너무 애쓰지는 말아라.

내가 보니 반만 이뤄도 성공한 삶이 되겠더라. 그만큼 부모들의 소망은 끝이 없단다. 물론 왕교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노력이 많은분이라..당당 하시겠지만...이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해보자는 소리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딸들에게 너무 많은걸 요구하시는거 아닌가요?

물론 틀린 소리는 하나도 없지만...제가 다시 산대도 사실 조금은 벅찬 지침서라구요.

하지만 너무나 둘러서 돌아온 시간들이 많았던 사람으로서..분명 정확한 네비게이션은 맞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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