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홍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주유소 뒷길로 들어서, 오십 미터쯤 걸어 막회 집 앞에서 좌회전하여 KT신촌지사 담장을 따라 실내 포장마차와 작은 빵집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세번째 건물 지하에 '제3의 작가'라는 간판이 걸려있고 그곳에 대필작가인 한남자가 살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사막속 우물처럼 숨어있는 이곳은 시간이 비껴간듯이 오래된 건물들과 목욕탕과 어디론가 떠나갈 수 없는 오래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맹호부대로 베트남에도 다녀왔고 장기복무를 끝내고 시작한 두번의 사업이 망해버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남자의 아버지는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이다. 그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했던 유일한 존재인 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해심 많고 따뜻한 여자였다. 도시에서 쫓겨 시골에 가서도 그곳에서 쫓겨 다시 도시의 지하로 숨어들때도 그녀는 그남자의 곁에서 울타리처럼 이불처럼 보듬어주던 존재였다. 무능한 남자들을 떠나가는 여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임에도 조바심없이 하지만 단아하게 그렇게 그를 지탱해 주던 아내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양 종신보험을 들어놓고 세상을 떠난 후에 아내가 직접 새긴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라는 문패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보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아내가 아무 이유없이 만든 문패가 아닐 터였다. 순종이라는 증명서를 달고 시골 그들의 집에 들어왔던 진돗개 '태인'은 순수 혈통 진돗개임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다가...집자리를 봐주러온 스님 말대로라면 안주인 살리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명견이었다. 무병을 앓았을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것을 보고 동물들과 소통하고 알지 못한 병을 앓았던 아내를 그는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쓰면 책열권으로도 모자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면서 왜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못했을까. 불쑥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고 갑자기 죽어버린 장선생은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는데.. 혹 죽기전 그 남자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글로 세상에 나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아내의 전령사가 아니었을까. " 나는 우연을 안 믿거든요. 안 믿는 게 아니라 다 필연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필요해서 생긴다는 거지요. 당연히,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저마다 세상에 기여하는 자기 역할이 있어요. 그럼 나는 어디에 필요한 존재였을까...."-130p 비록 지하에 그림자처럼 숨어 살지만 분명 그가 세상에 온 이유는 있을것이다. 나또한 내 역할이 분명 있을것이다. 좋아하는 종우형이 끓인 도루묵 찌개와 일부러 챙겨준 비타민 통과"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더 하명하실 일은?" 메모에 그가 아직은 누군가로 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한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산자가 보내지 않으면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못 떠나는 건 산 사람 때문이다.'-247p 여전히 보내지 못하는 그에게 그의 아내가 가만히 속삭일것 같다. "우리가 있는곳을 짚어봐요. 마음으로 보면 돼요. 우리가 보일 때까지 이 점속으로 들어가 봐요. 마음으로 점을 따라가면 지도가 확장될 거에요." -135p 어쩌면 그곳이 그녀가 꿈꾸었던곳...하지만 함께 도달할 수는 없었던곳...혼자지만 기어이 점을 찍어야 하는곳.. '아홉 번째 집 두번 째 대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249 p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 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아내의 시(詩) '별은' 어둠이 깊을수록 아무리 적은 불빛이라도 등대는 될수 있다. 언젠가 다시올거라고 아내가 말했던 태인의 닮은 개를 앞세우고 그 불빛을 따라가면 '아홉 번째 두번 째 대문'에 그가 도달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