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유고 - 조선 중기의 명재상 양파 정태화 문집
정태화 지음, 박세욱 외 옮김, 이장우 감수 / 연암서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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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효종,현종 세임금의 치하에서 22년이나 정승을 지낸 양파 정태화는 생소한 인물이다.
같은시대를 살았던 송시열이나 최명길등에 비해 역사에 미치지 못한것이 없었는데 말이다.
성리학의 대가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던 우암보다 높은 관직을 지냈으면서도 당쟁에서 살아
남을만큼 현실감각에 뛰어났으며 특별히 모나지 않게 처신하여 명철보신할수 있었던
지혜로움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화재로 인해 소실된 작품을 빼고 유고로 정리된 작품만 이정도라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비중과 명성에 비해 그렇게 많은 작품은 아니라니 정실에 흐르는것을 경계하기 위해
명사들이나 친구들과의 교류를 의식적으로 피한것 같은 그의 외로움도 느껴진다.

이책을 읽는내내 마치 옛선비처럼 단아한 앉은뱅이 책상위에 서책을 펼쳐놓고 선인들의
귀중한 글을 읽듯이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물론 책의 분량으로 인해 도저히 들고 볼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책을 만들어낸 공역자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고 양파와 그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영광된 일이었을까.

이작품의 특징은 남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가 유난히 많고 몇편의 축시(祝詩)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교류시와 임금님께 올린 상소문과 기행문형식의 일기등이다.
한시(漢時)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던 나로서는 잘 다듬어진 역(譯)이 훌륭해서인지
시(詩)의 또다른 절제와 아름다움을 느낀 기회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애독하였던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의 운자를 빌려 지었다는 시를 보면 마치 여백의
묘를 살린 기품있는 한국화를 보는듯 편안하다.
튀지 않으면서도 깊은 가슴속이야기는 오히려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오언절구와 칠언절구의
시들이 어렵지 않으면서 아름답다. 수백편의 한시(漢詩)를 읽다보니 이정도라면 나도 한시
한편정도는 쓸수 있지 않을까 싶게 가깝게도 느껴진다.

曉靄陰陰月色沈(효애음음월색침) 새벽 구름 어둑어둑 달빛은 가라앉는데
曉(새벽효)靄(아지랑이애)陰(그늘음)陰(그늘음)월(달월)色(빛색)沈(잠길침),

隔林何處數聲砧(격림하처수성침) 숲 넘어 어디에서 다듬이 소리 들리나?
隔(막을격)林(수풀림)何(어찌하)數(셀수)聲(소리성)砧(다듬잇돌침)

鳴苦怨蛬空庭夜(명공고원공정야) 울어대는 귀뚜라미 빈 뜰의 밤을 고통스럽게 원망하고,
鳴(울명)蛬(귀뚜라미공)苦(괴로울고)怨(원망할원)空(빌공)庭(뜰정)夜(밤야)

歸雁唯傳遠地心(귀안유전원지심) 돌아가는 기러기 오직 먼 나그네의 마음 전하겠지
歸(돌아올귀)雁(기러기안)唯(오직유)傳(전할전)遠(멀원)地(땅지)心(마음심)

梧葉正含凉露重(오엽정함량로중) 오동잎 마침 차가운 이슬을 머금어 무거운데
梧(벽오동나무오)葉(잎엽)正(바를정)含(머금을함)凉(서늘할량)露(이슬로)重(무거울중)

桂宮還覺彩雲深(계궁환각채운심) 달나라 다시 오색구름 더욱 깊음을 깨닫네.
桂(계수나무계)宮(집궁)還(돌아올환)覺(깨달을각)彩(채색채)雲(구름운)深(깊을심)

人生百歲元非久(인생백세원비구) 인생 백 년 본디 오래지 않은 것이니,
人(사람인)生(날생)百(일백백)歲(해세)元(으뜸원)非(아닐비)久(오래구)

一日相逢直萬金(일일상봉치만금) 하루라도 만난다면 억만금에 맞먹으리
一(한일)日(날일)相(서로상)逢(맞이할봉)直(값치)萬(일만만)金(쇠금)

-본문336p '새벽에 우연히 읊음(曉來偶吟)'

한자를 풀이해 읽어보면 어렵지 않다. 물론 한자를 모른다면 어렵겠지만.
덕분에 가물거렸던 한자도 선명해지고 생각보다 한시 짓기가 어렵지 않을것만 같다.
또한 기행문에는 누구와 같이 동행하고 어디를 거쳐 누구를 만났는지를 자세하게
일기형식으로 나타내었다. 만난 인물들의 됨됨이와 인심까지 소상하게 밝혀 먼옛날
이국에의 풍경이 그대로 그려진다. 얼마전 발견된 정조의 비밀편지처럼 사서(史書)에서는
느낄수 없는 포장되지 않은 친밀함이 느껴져 이름도 낯설었던 양파 정태화의 풍모가
살갑게 전해진다. 단지 인물만을 해석한것이 아닌 시문학에 대한 연구와 사료로서의
가치가 대단한 자료임을 이렇게 발굴해주었는다는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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