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피크닉 민음 경장편 2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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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21C 한국인들의 욕망이 뒤섞여 도가니처럼 들끓고 있는 상징적인 곳이라고

한작가가 말했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방인이 아닌 영주인이 되기위해선 입국비자 말고도

깐깐한 필요충분조건이 만만치 않은 대한민국안에 있는 또다른 왕국처럼 견고하기만 하다.

벼락에 맞아죽을 확률보다 더하다는 로또에나 당첨되어야 겨우 입국비자를 받을수 있는곳!

같은 에리어 안에 살고 있다해도 자격미달이면 물과 기름처럼 섞일수 없는 그곳에 기적처럼

진입한 한가족의 '강남인처럼 살아보기 고군분투기'이다.

모범생 큰딸 은영과 로데오거리에 가면 흔히 만나는 신나게 막 살아보기의 전형 둘째 딸 은비와

자신의 정체성조차 알지못하고 방황하는 막내아들 은재의 고독과 방황이 그대로 전해진다.

복권당첨자의 거의 대부분이 거지로 전락한다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낡긴 했지만 압구정

'한양아파트'에 눌러 앉은것은 그나마 다행인것처럼 보인다.

이혼하고 다른여자와 복권당첨금의 20분의 1일 챙겨 떠난 아버지가 결국 그 덫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성탄절에 토막낸 시체를 나누어 담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세남매는 덫에서

벗어나긴 한걸까? 명문대를 졸업하게될 은영은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건들건들 자신의 젊음을 팔고 사는 방탕녀 은비의 명품가방도 그녀의 빈삶을 빛나게

해주지 못했고 왕따로 자신의 방에 갇혀있는 은재역시 8학군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다.

국산차보다 외제차가 더 많이 보이고 세계적인 불경기와는 아무 상관없이 흥청거리는

로데오거리에는 마치 바리케이트가 쳐진것처럼 이방인을 밀쳐내고 자신들만의 성처럼

성벽이 완고하다. 차라리 성남에서 로또당첨시간만 기다리고 살았더라면 그들의 삶이

이처럼 피폐해지지 않았으려나. 잡힐지도 모를 장미빛 미래가 실낱처럼 남아있더라면

좀더 자신의 삶이 진지해지지 않았으려나...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만약에를 생각케한다.

성실하게 한푼 두푼 모아서 이룬 '富'와는 엄연히 다른 '富'를 누리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이방인들에게 압구정동은 굴레이고 사냥감을 보고 침을 흘리는 사냥꾼들에게는 그저

'먹잇감'일 뿐이다. 사랑없이 몸을 섞는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코를 높히고 눈을

째는 허구의 공간에서 어찌 삶이 진지하고 풍요로울것인가.

진창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끝을 들고 걷는 사람처럼 어쩌다 스쳐가게 되는 그곳에서

나는 편하게 발끝을 내려놓을수가 없었다. 그들이 막아놓은 바리케이트를 넘을 용기도

없었거니와 넘고 싶은 의지도 이미 상실한채 다리하나를 두고 압구정동의 불빛이 빠꼼히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혹시나 하는 기대였을까 아님 고고한 선비정신

이었을까. 뻘겋게 숨을 토해내는 수돗물을 마시기 보다 사람냄새나는 강북이 난 편하다.

황량한 성탄절의 밤거리로 나선 세남매의 피크닉이 즐겁지 않은건 아직은 남아있는

그들의 순수와 젊음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숨을수 없는 범죄의 기억을 떨구고

차라리 강을 건너 제몸에 맞는 따뜻한 옷을 입고 이제는 어깨를 펴고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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