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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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생을 살면서 나를 스쳐가는 모든것들...가족,친구,동료...그리고 바람과 꽃들과 낳고 자랐던 골목길까지도..

모두가 인연이다. 해방동이인 저자의 나이즈음이면 이제는 추억을 만들기 보다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들이 더

많아진다. 그가 하루에 한편의 단편소설을 써 제꼈다는 열네살에 도달한 나는 저자가 쓴 소설을 그야말로

하루에 한편씩 읽어제끼는 소녀였다. 겨울나그네에 다혜가 되어 마치 저자가 내 첫사랑 민우인양 목마르게

그를 갈망하며 도서관을 향해 뛰어다녔던 소녀가 이제는 불혹을 넘어 차분해진 저자의 담담한 인생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나이가 되었다.  불꽃같았던 열정이 사그러진 자리에 은근한 불꽃처럼...그도 그렇게 자리잡은듯

하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꽃들에게 환호하고 거추장스러워 치워두었던 난초화분을 서재에 입양하여 말을

걸어주는 친절함에 난초도 감복했는지 그 귀하던 꽃을 피웠다지 않은가...

 






 

그의 말처럼 꽃들이 우리에게 오기전에 우리가 먼저 꽃이 되어 꽃들을 찾아가 그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신비와 우수를 알게되는 여유와 혜안이 생긴모양이다.

담담하던 그가 이렇게 많은 꽃들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인생이 깊어지면 나를 스치는 모든것들이 '인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저녁이 오면 문득 쓸쓸해지고 눈빛이 순해져 자신의 외로운 그눈을 들여다 봐야 하는 시간이 온것이다.

저자는 세례를 받은 천주교신자이지만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는 넉넉함 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이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자칫 종교의 가장 큰 맹점인 '무조건 맹신'에 빠지지 않고 모든 성직자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그의 소리를

자신의 종교를....혹은 신을 위해 테러하고 전쟁하고 비난하는 모든 인간들이 들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한마디가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일이 될까봐 늘 말을 아끼는

이해인 수녀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나역시 그분을 그렇게 사랑하므로..

 

 





 

그의 가족사랑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곤경에 빠진 남편과 아빠를 구하기 위해 전장의

척후병처럼 앞장서는 그의 아내와 어린딸의 이야기에서는 가슴뭉클한 가족애가 그대로 전해진다.

하긴 가족만한 빽이 있겠는가. 서로 물고 싸우다가도 적이 나타다면 혈맹의 동지가 되는 그 일사불란함이라니..

그가 팔불출소리를 들어도 행복해하는 이유를...앞으로도 더한 팔불출이 되어 살겠다는 그의 의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늙고 조그만 엄마가 부끄러워 예수를 세번 부정한 베드로처럼(희한하게 그의 세레명도 베르도다) 온실의 뒷편에

숨어버린 어린 그가 더 늙어버린 엄마의 손을 잡고 피난지였던 부산에 찾아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옛집의 돌담아래서

가난했지만 소중해져 버린 추억과 조우하는 장면은 코끝이 시큰해진다.

 





기록에는 있지만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주소는 내가 태어나 스무번을 이사하는 동안 이삿짐위에 오롯이 옮겨앉아

지금 내곁에 있다.  몰랐거나 잊혀졌던 기억을 그가 깨우고 살려내고 현생의 '인연'이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가 쓴글들이 누구에겐가 희망이 되고 꽃이 되었던것 처럼 낯가림을 떨치고 더 많은 독자앞에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이생에 태어나 내가 그의 글을 먹고 자랐던것은 분명 엄청난 '인연'이었을 터...

물에 빠진 그를 구해냈던 '바보'의 따뜻한 등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그의 말처럼 나도 그의 따뜻한 온기를 생생하게

추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등까지야 바라겠는가...그저 손이나 한번 잡아준다면 전생에 억겁의 인연이 있어야 현생에

한번의 '인연'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 그를 향한 내 30년 넘은 사랑이라면 이유가 너무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내가 가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연'을 맺게 해준 백종하 사진작가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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