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최효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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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도가 없어지고 평등한 사회가 된 요즘에도 우리는 괜찮은 집안에 대해
은근한 부러움의 눈빛을 보낸다. 요즘에 괜찮은 집안이라고 하면 재벌가같은
경제적인 능력을 더 우선할수도 있지만 옛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진출한 인원이 더 많고 덕을 높이 쌓은 집안을 일컬었던 모양이다.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청류(淸流)로서 학문에 힘쓰고 자손들의
교육에 힘써 성공시킨 인물들도 결국은 명문가의 사람들이다.

조선5백년의 역사는 당쟁의 역사라고 할만큼 당파싸움이 대단한 시대였다.
조선의 정치가 썩고 수명이 짧았던 이유중에는 단연 이런 이유가 으뜸이었을것이다.
안동김씨의 위세가 대단하여 하늘을 뚫을듯 했지만 같은 안동김씨의 문중에서도
명문가의 위상을 높였던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당파싸움의 원흉으로 존경받지 못한
인물들도 많이 있었다.

대략 이책에서 다룬 명문가의 일면을 보면 미래를 보고 자손을 교육시키고
중용의 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리를 쫓았던 인물들이 많았다.
심지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지만 자손들의 교육에 힘쓰기 위해
과감하게 벼슬을 내버린 김진과도 같은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의 자손들이 크게 성공하여 집안을 빛내었으니 그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가지 명문가의 초석을 닦은 가문의 기획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리더십은
'남성적'이라기 보다 '여성적'이라는 사실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파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물어뜯는 시대에서 양쪽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우복 정경세의 일화는 인간미와 성품이 깊으면 어느것이라도 끌어안을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대파의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는 그의 사람됨과 안목에 깊은 존경을
느끼게 된다. 명분과 실리사이를 중용의 자세로 명문가를 일구어낸 그가 있기에 그의
후손인 종손은 대학을 마치자마자 고향으로 내려와 종택을 지키는 결심을 했을것이다.

서구화에 밀려 우리의 소중한 것을들 잃어가고 있는 이시대에도 분명 명문가는 있다.
그들에게 전해진 유전인자는 후손에게 성공과 자부심의 길을 걷게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시대에 진정한 명문가란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장기투자자'에
비유한 작가의 말처럼 세월이 흐르고 돈이 최고가 된 이시대에도 영원히 존경받는
명문가는 분명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조상은 나에게 명문의 유전인자를 전해주지 못했지만 눈이 멀었어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고 명문가로 이끈 고성이씨부인의 예처럼 내가 명문가의 기획자가 되어보고 싶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새시대에 필요한 새명문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듯..징기즈칸의 한마디가 유난히
내마음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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