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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시작된 전쟁의 역사는 유구하기만 하다.
어떤 명분의 전쟁이라도 아름다울 수 없고 상처없는 승리란 있을 수 없다.
한반도에 고구려,백제,신라가 같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특히 지금의 경남에 자리잡았던 가야국이 신라에게 멸망하거나 속국이 되었던
시기에 가야연맹 일원인 다라국의 왕녀인 '아사'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힌것처럼 이 이야기는 완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남 합천의 옛 가야 널무덤에서 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적(일종의 흙피리)에
새겨진 8언 시의 글귀는 분명 그녀가 실존했던 가야국의 왕족이었으며 시의 내용처럼
사랑의 슬픈전설이 깃들어 있음이 분명한것이다.
얼마전 종영된 '선덕여왕'처럼 삼국시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나-당이 연합하거나 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하거나 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그와중에 찬란한 문화가 있었지만 힘이 미약했던 가야연맹이 막을 내릴수
밖에 없었던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을것이다.
가야국이나 백제는 왜국과 교류가 빈번했으며 주인공 아사는 왜국의 백제 총독 아시히토의
딸 하나미와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혼인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의 자손인
허장옥사이에서 난 딸이었다.
망국의 나라의 왕녀가 된 아사는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대담한 여자였다.
운명처럼 만난 신라의 화랑 설오유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은 맑은 두영혼의
결합이었으며 거불할수 없는 숙명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잉태한 채 포로로 끌려가게 된 백제의 의자왕의 후궁이 된
아사...참담한 죽음 후에 남겨진 딸 사비는 또하나의 아사였다.
엇갈리고 비켜가는 사랑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눈물겹고 너무나
아름답다.
황산벌의 계백의 최후처럼 스러져간 백제...살아남은 사비는 엄마의 소원대로 아버지
설오유를 만나고 영원한 자비의 세계로 귀의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단지 발굴된 토적에 새겨진 글귀 하나에서 시작된 허구라 할지라도
물붓고 3분이면 먹을수 있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하는 이시대에 고루하고 허무맹랑
하게 들릴지라도..난 황강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두사람의 사랑과 끝내 그들의
결실인 사비에 의해 완성된 지고지순의 사랑이 가슴깊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이보다 더한 사랑이 없으란 법이 있겠는가.
사랑하는 지아비를 떠나보내고 머리를 잘라 신을 삼고 연서를 남긴 미이라가
발견되기도 했으니 비록 자유분망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은근하고도
절절한 사랑은 깊이가 더하니 혹시 전생에 나도 한번쯤 그런사랑을 해봤음직도 하다.
하여 설오유와 아사도 현세에 다시 태어나 아쉬웠던 사랑을 불태우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전쟁의 참혹함이 진탕처럼 난무하던 시대에 태어나 연꽃같이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이제는 활짝 꽃피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