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면 잘 살 줄 알았지
김빛나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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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대이던 시절, 서른 살이란 나이는 아주 한참 후에야 도착하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죽겠다'는 이상한 말까지 했었다. 그만큼 나에게 서는 살은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 2배를 넘어선 시간을 살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라니.


지금 내 나이에서 보는 서른은 한참이나 어린 애 같기만 하지만 실제 서른 이라면 만 스무 살을 지나 인생의 3분의 1의 시기에 도달한 어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서른 이란 나이가 왜 이렇게 어설프고 불안해보였을까. 저자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나의 서른을 돌이켜보니 저자처럼 엄청난 터닝포인트의 시간이었다.


저자가 그랬듯이 저자 나이의 부모님 시대에는 서른 정도라면 거의 결혼을 했고 조금 더 지나면 내 집 장만도 하고 자식도 둘 정도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보다 더 풍요로와진 지금의 서른을 사는 청춘들은 더 불안하고 더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엇때문일까.

그저 대학을 향한 엄청난 경쟁, 그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리기만 했던 시간을 지나온 아이들이었다.


저자도 그랬다고 한다. 우열반이 만들어진 고교시절엔 우수반에 들어가야 뭔가 이기는 것 같았고 SKY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이 자격지심으로 남아 누가 어느 대학을 다니냐는 말에 움츠러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만은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 다니는 것을 목표로 스펙을 쌓고 죽어라 노력했다고.

그래서 얻은 직장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단다. '남의 일'을 죽어라 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했다.


몇 백대 일의 청년주택 당첨으로 괜찮은 집도 마련했지만 모든 것이 허무한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그리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사표를 제출하고 자유를 얻었다는데 월급없이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엄청난 시간과 결심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랬겠지.

좋아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사표 한 장 품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어제, 이제 서른도 막바지에 이른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표를 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고, 요즘 배우는 요가 덕분에 숨을 한 번 고르고 몇 분 참았더니 조금 나아졌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딸아이가 자꾸 떠올려졌다. 내 아이도 저자가 겪었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다행스럽게 빛나는 이름처럼 빛나는 시간을 맞은 것 같다.

하지만, 그 불안했던 서른을 지나 마흔, 쉰에 이르면 인생이 쉬워질까. NO NO! 그럼에도 저자가 위안을 받았던 말 'No worries'

미리 걱정하지 말고 순간 순간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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