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출간한다. 할 일을 다해냈다고 여긴 바움가트너는 긴장이 풀렸는지, 무료함을 달래고 싶었는지 갑자기 차를 몰고 애나와 함께 같던 길일 수도 있는 길로
운전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뛰어든 사슴을 피해 운전대를 꺾다가 나무에 부딪히고 만다.
정신이 잠시 멍하기는 했지만 통증은 크지 않았다.
바움가트너는 심하게 찌그러진 차의 엔진이 침묵했다는 것을 알고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채 도움을 찾아 다시 길위로 나선다.
인생은 그렇다.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상처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또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에도 다시 길을 걸어야 한다.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소설의 저자인 폴 오스터의 전작들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문체에서 그의 문학적 역량이 느껴졌다. 삶의 여정들, 어둠과 빛이 교차했던 그 길면서도 짧은 듯한 여정을 이렇게 그려냈다는 것에 감동과 슬픔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 글이 그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문장에 마음이 머물렀던 이유였다. 바움가트너의 여정이 혹시 폴 오스터의 삶은 아니었을까. 문득 그의 전작들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