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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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늙은 교수 바움가트너는 40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아내를 10년전에 떠나보내고 그녀가 남긴 원고를 정리해서 출간하기 위해 서재에서 일상을 보낸다.

참고할 책을 찾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된 바움가트너는 불위에 올려둔 냄비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녹아들 지경이 된 것을 보고 급하게 손으로 잡아 올리다가 심한 화상을 입게 되고 가스검침을 하러 온 검친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가 넘어서 큰 부상을 당한다.


심한 통증을 느끼다가 잠이 든 바움가트너는 꿈인 듯 현실인 듯 오랜 기억속으로 빠지게 된다.

처음 아내인 애나를 만났던 날,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그녀가 죽은 날의 풍경들, 이후 다시 사랑을 느끼게 된 주디스와의 추억, 청혼을 했지만 거절 당한 기억들까지...


바움가트너는 혹시 머리를 다쳐 정신이 오락가락할까 두려워한 검침원이 '우리가 어디있죠?"라고 묻자 "우리는 물론 여기 있지, 우리가 늘 있는 곳에.."라고 답한다.

아주 철학적인 대답이었다. 애나가 죽고 난 후 애도 상담사와의 대화에서도 아내를 잃은 자신에게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가 아니고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라고 답하는 장면에서는 스스로를 위안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죽고,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 여덟에 죽죠...

아..바움가트너가 애나가 죽었을 때 팔 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는 것이 그대로 전해졌다. 애나의 죽음 이후 바움가트너의 삶은 평온을 위장한 고통이었다는 것을.


그러다 문득 냄비를 태운 그 날 자신이 애나를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쓰던 물건들을 없애고 기억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집 안에 그와 함께 했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결국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출간한다. 할 일을 다해냈다고 여긴 바움가트너는 긴장이 풀렸는지, 무료함을 달래고 싶었는지 갑자기 차를 몰고 애나와 함께 같던 길일 수도 있는 길로

운전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뛰어든 사슴을 피해 운전대를 꺾다가 나무에 부딪히고 만다.

정신이 잠시 멍하기는 했지만 통증은 크지 않았다.

바움가트너는 심하게 찌그러진 차의 엔진이 침묵했다는 것을 알고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채 도움을 찾아 다시 길위로 나선다.

인생은 그렇다.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상처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또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에도 다시 길을 걸어야 한다.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소설의 저자인 폴 오스터의 전작들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문체에서 그의 문학적 역량이 느껴졌다. 삶의 여정들, 어둠과 빛이 교차했던 그 길면서도 짧은 듯한 여정을 이렇게 그려냈다는 것에 감동과 슬픔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 글이 그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문장에 마음이 머물렀던 이유였다. 바움가트너의 여정이 혹시 폴 오스터의 삶은 아니었을까. 문득 그의 전작들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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