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이 머문 정원의 속삭임 - 추억과 사유, 사랑으로 엮어낸 이야기
이형하 지음 / 작가와비평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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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면 달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달은 진 적이 없다.

해에 가려져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하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모든 생명을 키워내는 해도 중요하겠지만 캄캄한 밤을 밝히고 별과 별 사이의 중력을 담당하는 달이 더 귀하지 않을까. 우리는 강한 것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시간에 맞춰 몸이 변화되고 부드러운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달의 감사함이 더 느껴졌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에서 근무했다는 저자의 삶은 치열해보이면서도 푸근하게 다가온다. 일단 이런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품이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와 같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신하에게 하사했다는 계영배! 술을 너무 많이 먹지말고 이 잔에 넘치게 따르지 말라는 배려로 만들어진 계영배를 그 신하는 오히려 넓게 펴서 큰 잔을 만들었다는데 과학적인 이론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술이 일정량이 넘어서면 오히려 다 사라질 수 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동서고금 이런 술잔이 있다는 걸 몰랐을테니 계영배의 실체를 본 외국인의 놀라움이 오죽했을까. 하긴 고 정주영회장은 거북선이 새겨진 지폐 하나로 거금을 대출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단한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니라'를 제대로 보여준 술잔이다.


뒤돌아보니 나 역시 후회할일 천지이다. 가보지 못했던 곳들, 이러저러 늘어만 가는 약들을 보며 챙기지 못했던 건강, 먼저 떠난 동생들을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던 일들, 인생이 이렇게 짧다는 걸 젊을 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청춘이 그립다.

그럼에도 이렇게 늙어가는 혹은 익어가는 시간을 다시 젊은 시간으로 되돌리기는 싫다.

그만큼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와 번민과 아픔같은 것들 역시 나를 따라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하지 않은 정원에서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을 읽은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라라고 타박하지도 등을 떠밀지도 않는게 좋다. 그냥 이렇게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누군가의 삶이 나와 닮았음이 신기했고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음이 부러웠다.

바람이 시려서 어느새 베란다 문을 닫는 계절이 왔다. 아마 내일쯤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술한잔 걸치면서 둥근 보름달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신없을 명절 전 잠시 마음을 다독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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