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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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쉬운데 어렵다. '관내'라고 하면 무슨 관을 얘기하는 것일까.

저자들의 해설을 보면 '도시를 관통하는'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책을 좋아하고 외출시에는 가능하면 가방에 들어갈 정도의 책을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두툼한 책은 좀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책 한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독자들이 종이의 무게를 달아 사주는 고물상도 아니고 대개 책들은 페이지수로 가늠을 하기 때문에 무게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가슴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가볍게 여기저기 돌아보는 정도의 여행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나같이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가뜩이나 요즘 우울증으로 고생중인 나에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인천은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여전히 차이나타운이 있고 맥아더 동상이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곳에 성냥공장이니 방직공장 같은 것들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가난한 조국의 상당 부분 우리의 가난한 '여공'들이 짊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차이나타운의 중국요리보다 그런 곳들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는 걸 알았다.


몇 년전 '미투'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많은 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유명인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성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빈약했었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었다.

미군부대가 있던 도시에서는 성매매가 버젓이 이루어졌고 그 돈이 가난한 조국의 양식이 되었음을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넘어서 우리는 성매매, 성폭력, 성추행같은 것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관대해왔던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맞다. 여성이 몸으로만 평가되는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딸들이, 손녀들이 살아갈 시대에는 옛말로나 존재하기를 바라고 그 책임은 과거 어른들, 지금의 우리들에게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보광동에서 태어나 이태원소재의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그 동네가 공동묘지터였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사대문안으로만 묘지가 없지 그 밖으로는 온통 묘지가 즐비하던 시절 이야기일터다. 암튼 어려서 무슨 클럽이니 양공주니 하는 말들을 일상으로 들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들을 웃돈을 주면서 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났던 그 호텔은 내가 결혼을 한 곳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그닥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이태원에 고깃집을 내어 성공해서 돈을 무척 벌었다.

아주 오랫만이 그 집을 찾아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사의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실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요즘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얼마 전 그 현장에 구호활동을 하던 소방관의 자살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무수한 사고를 겪고 보고 듣고 살아간다.

그리고 흥분하고 성토하고 때로는 현장에 찾아가 시위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인간의 아주 탁월한 능력인 '잊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냄비에 물이 급격히 끓어오르다가 또 그만큼 식어가듯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야만 복잡한 머리속을 비워내고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 잊혀질뻔했던 일들을 이렇게 다시 끌어내야 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어쩌면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관내 방관자'로 남았다는게 많이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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