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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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도 훌쩍 떠날 수 있었구나. 사는 일이, 살아내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떠났구나.

다시 돌아올 마음없이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났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쓸쓸해서, 한 때 내 모습처럼 느껴져서 자꾸 울컥했다.


여행을 떠나려면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이던가. 일주일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다시 돌아올 일이 없으니 단도리하고 말것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스단속하고 관리비며 전기요금에 전화요금까지 자동이체로 돌려놓고 가끔 누군가 불러서 환기좀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오래 떠나있어야하니 가져갈 것도 많을 것이고. 암튼 이렇게까지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부럽다.



'도망치고 싶었다'라는 말에 더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내가 내가 아닌 곳으로...다시 시작하고 싶어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단다.

나도 그랬었다. 딱 20여년 전쯤. 저자만큼의 용기는 없어서. 다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어서 살던 아파트는 세를 주고 남쪽 끝으로 도망쳤었다.

장소는 다르지만 아마 지구쯤이라고 여겨진 남쪽 끝으로. 저자에게는 베를린이었나보다.

이후 파리로 스페인으로 스리랑카로 인도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도대체 1년이 넘는 여정을 견딜 짐의 무게는 얼마큼이었을까. 그 때 그 때 현지에서 조달을 했을까.

그 정도의 돈은 있었나? 그냥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들이 내내 궁금해졌다.

가끔 알바를 하면서 충당을 했으려나. 그래도 상상컨대 꾀죄죄한 모습이었겠지.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니 큰 짐을 등에 지고 마른 여자가 예뻐봐야 얼마나 예쁘게 보였을지 실제 모습이 궁금하긴 하다.



표지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어 꽃나무아래서 찍었더니 어느새 꽃잎하나가 몰래 책속에 숨어들었다.

아하 이 저자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니 예쁜 것에는 상당히 욕심이 있는가보구만.

꽃까지 훔쳐보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다시 돌아올줄 몰랐다고 했다. 아 어쩌면 스페인, 혹은 인도 어디쯤에서 밥집하나 내고 있었을지도 몽마르뜨 언덕쯤 어디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화가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를 그녀가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걸었더니 이제는 어디에 살아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줘서 기특해졌다.

내 딸이 이런 가출을 결심하고 몇 년동안 떠돌아다녔다면 그저 살아만 있어줘도 감사한 일이지.

간결한 그림이 저자의 마음을 닳은게 아닌가 싶다.

이제 어디에 있어도 아주 예쁘게 잘 웃을 것 같아서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남의 딸임에도.

인생자체가 여행이라고. 어디 서 있어도 온통 세상밖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알겠지만. 돌아올 곳이 있어서,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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