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컨티뉴 - 직장을 잃고 이혼도 했는데 저승사자를 만나 부자가 되었다
최해직(권영신) 지음 / 노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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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직장을 잃고 이혼도 하고 죽음까지 맞이할 인생이라면 끝이라는 얘기다.

명상이라도 하면서 치유를 해보려던 해직은 결국 죽어서 저승사자를 만난다.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수많은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죽으면 저승사자가 나온다고 하니 나중에 확인해볼 예정이다.



일단 죽고나서 저승사자를 만나면 대개의 혼들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들 하는데 저승의 좋은 점이 있던가.

해직은 거대한 낫을 든 저승사자를 만나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징징거린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뉘우치기는 커녕 변명으로 합리화하고 자꾸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저승사자는 해직에게 과거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첫 아내와 싸우던 순간들 그리고 다시 만난 연인과도 다시 싸우던 모습들. 그렇게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조금 후회의 마음이 드는 해직. 저승사자는 인간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몸의 형태는 사라지지만 에너지는 남아 우주의 순환속에 존재한다고.

마치 불경을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 죽음. 윤회, 순환, 인과같은 단어는 삶을 숙연하게 만든다.



인과 없이 결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것도 사실 해직의 무능함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억울하다고만 생각하면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남의 탓만 하고 있는 해직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승사자라고 해도 낫을 휘두르고 싶을 것 같다.

그나마 해직은 자신이 지나온 삶을 지켜보면서 후회의 시간이라고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 아닌가.



나는 윤회를 믿는다. 죽기전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환생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윤회는 업보이다. 업을 다 닦으면 윤회의 사슬도 끊을 수 있다고 믿는데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나는 해탈하긴 틀렸다. 해직처럼.



인간의 거의 모두 욕망을 지니고 있다. 왜 나에겐 주어지지 않는게 많은 건지 그토록 원하는 돈은 왜 오지 않는지, 자신의 그릇은 생각하지 않고 운명을 탓한다.

해직은 저자 자신이다. 저승사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한 저자는 마음 그릇이 적은데 무엇이 담기겠냐고 반문한다. 자신이 큰 아픔을 겪었기에 터득한 지혜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마음그릇의 크기는 어떤지 되돌아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철학서나 종교서적같은 느낌이 드는 묵직한 자기계발서여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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