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4월의 자살 산책
최하늘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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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란 단어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흔들린다. 오래전 내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제법 책도 많이 읽고 나름 어른스럽다는 자부심을 내보이면서 한 얘기가 '오는 것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가는 건 선택하고 싶어'였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사랑받지 못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였을까.

다소 치기어린 그 결심(?)은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일단 겁이 많이 나서였을 것이다. 살다가, 지치기도 하고 멈추고 싶을 때가 왜 없었을까.

여기 이 에세이의 주인공 친구였던 J가 왜 기어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았다기엔 평소 너무 활달하고 모험적이라고 했다. 우울증의 또 다른 증상이 과도한 즐거움을 카피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들키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더 살고 싶다고 암시하고 싶었을테니까. 자살은 어쩌면 죽고 싶은 마음보다 살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야 가능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죽음은 온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명대로 잘 살아도 오고 갑작스런 사고로도 오고 꽤 긴 고통을 겪으며 병사에 이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짐작해본다. J는 여러번 자살시도와 자해를 하면서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면 정말 완벽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짐작되니까. 그럼에도 그런 여러번의 시도는 살고 싶었다는 반증일 수 있겠다.

결국 성공했고 남겨진 사람들은 이렇게 아픈 기억으로 살아가겠지. J가 아무리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유서를 남겼다지만 남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다.


왜 하필 4월이었을까. 벚꽃이 찬란하게 핀 계절이라면 덜 두려웠을까. 아님 화려한 꽃비처럼 낙하하고 싶었을까. 남은 이들은 4월이 오면, 벚꽃을 보면 또 힘들어지겠지.

그렇게 떠나서 자살에 성공했다고 행복해할까. 아님 남은 이들의 아픔을 보면서 후회할까.


아팠다. 내가 너를 조금 더 많이 안아주고 얘기를 들어주었다면 너는 살아있었을까.

저자의 말처럼 나도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했었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남동생을 떠올리면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남은 첫 째 누나는 사는내내 후회와 그리움과 자책으로 시달리다 어느 날 세상 떠나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하겠지. 그리고 그 때 못해준 얘기들을 하지 않을까.

'많이 아프니?'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미안해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무슨 소용인가.

이 에세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내고 어쨌든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의 사과편지이고 스스로를 일으켜세우려는 처방전같은 고백서이다.

이렇게라도 J와 나누었던 말들, 모습들을 기억하고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하지만 제 선택으로 떠나간 친구, 더 이상 잡지 말고 잘 보내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래야 남은 우리도 살아갈 수 있을테니.

소풍 끝내고 떠나 다시 만나는 날, 그 때 등짝을 후련하게 때려주자.

하늘씨, 오늘 하루, J가 버리고 간 오늘 하루,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어느 하루였음을 떠올리고 잘 살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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