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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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의 능력은 어느정도일까.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기억도 있다지만 평생, 삶이 끝나기 전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는 기억도 있다.


오래된 골목길 막다른 길 끝에 자리잡은 세탁소가 있다. 일부러 찾아와야만 보이는 세탁소에는 마흔 정도의 사장이 손님을 맞는다.

세탁소 사장이라기 보다는 문학청년처럼 보이는 연약한 모습이지만 누구의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받은 손수건을 세탁하기 위해 찾아온 소녀, 샤오루는 잠시만 만나자는 남친의 여운이 불안해서 사장님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인생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헤어짐을 위해 만나는 것'이라는 말에 조금은 설득당하게 되고 결국 사장님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세탁소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이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나름 성공한 캐리우먼이 된 여자는 시간을 쪼개쓸만큼 자신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마치 여유가 생기면 자신의 존재가치가 떨어질 것이 두려운 것 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를 잃고 아이가 쓰던 속싸개를 맡기러 온 엄마손님 역시 아이를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꿈꾸던 작가의 글로 들어선 초보작가 역시 다음 작품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글쓰기를 주저하지만 사장님의 조언으로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여섯살 어린 아들을 이모에게 맡기고 사랑하는 남자를 좇아 떠나버린 엄마가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메어준 베낭을 끌어안고 울지만 이모할머니는 아이를 말리지 않고 실컷 울라고 한다. 이후 소년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늑한 이모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한다. 바로 세탁소 사장이 그 소년이다. 할아버지가 하시던 세탁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 어머니의 부재가 그를 외로운 소년으로 성장시켰지만 인생의 깊은 철학에 이르러 세탁소를 드나드는 수많은 손님들의 사연을 해결해주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아픈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사장 역시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결국 그리운 엄마를 만나게 된 사장과 그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해후하게 될까.

버리고 싶은 기억, 버리고 싶은 물건들.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물건은 죄가 없다. 그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 그전과는 달라진 것 뿐이다..라는 할머니의 말이 여운에 남는다.

사실 사장은 적극적으로 손님들의 사연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해답을 찾아가도록 잠시 귀를 열어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한 두어마디 조언과 함께.

어쩌면 우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지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모른척 하거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뿐.

나 역시 잊고 싶은 나쁜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 이 소설속 세탁소는 대만에 있는데 비행기를 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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