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내게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 찬란하고 고통스럽게 흩어진 언니의 삶 그리고 조현병
카일리 레디 지음, 이윤정 옮김 / 까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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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은 가슴에 상처가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살아가는 모든 순간 그 기억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여섯살 차이가 나는 언니를 떠나보낸 카일리도 그랬다. 더구나 스스로 사라져버린 언니라니.


다소 소심하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았던 카일리와는 다르게 언니 케이티는 고집도 세고 언제나 리더처럼 누군가를 이끌었고 외모도 매력적인데다 제발 동생을 낳아달라고 부모님을 졸라 결국 소원을 이루어낸 멋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케이티의 동생, 카일리가 태어났고 언니는 소중한 보물처럼 카일리를 보살폈고 사랑했다.


언니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는걸 느꼈지만 단순히 사춘기의 변화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불행을 막지 못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자주 화를 내고 폭력적이 되어가는데도 부모님은 물론 카일리조차 언니가 조현병일 거란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조현병은 유전일까. 아니면 언니가 몇 번의 뇌진탕을 겪으면서 후천적으로 온것일까. 카일리는 언니가 사라진 이후 이 문제를 곱씹어 보곤 한다.


무심했던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언니의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시키려 노력했었다.

언니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생기면서 카일리도 언니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 딸의 병을, 언니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벽이 되었다.

조현병을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심리치료도 그닥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물치료는 외모를 급격하게 변화시킬만큼 살을 찌우게 했고 무기력을 가져왔다.

이제 언니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선택하는 일을 할 수는 있을 정도로 분별력이 남아있었을까.


열 일곱 생일파티를 3일 앞둔 어느 날, 언니는 사라졌고 남겨진 카일리의 가슴에는 주홍글씨처럼 상처가 남는다. 심리치료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령술사들을 찾아가 사라진 언니를 만나고 싶어했다.

대부분 사기꾼이었지만 가장 마지막에 만난 심령술사는 숫자 11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건 언니와 카일리만 알던 숫자였다.

'이제 언니의 실종이 자기탓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네 길을 가라'고 언니가 말했다는 말에 더 이상 심령술사를 찾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실제 언니의 영혼이 심령술사를 찾아와 정말 그렇게 메시지를 전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든 만나게 되는 숫자 11때문에 언니를 떠올리게 되고 떠나보내지 못했던 마음에 한 줌의 희망이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무거움을 글로 하나씩 덜어냄으로써 카일리는 점차 보통의 일상을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이 책이 탄생되었다.

참 가슴아픈 스토리이다. 조현병의 발병원인부터 왜 하필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하는 마음부터 혹시 언니의 실종에 내 탓은 아니었는지 끊임없이 묻는 카일리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한번 안아봐도 돼? 카일스?"

언니와 가장 마지막으로 나눈 말과 그 날의 포옹이 늘 가슴에 고여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 카일리와 그녀의 부모님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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