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가 어느 날 사라졌다. 별 볼일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막
쓰기 시작한 참이었다. 잘 못나가는 딸인 용호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사람이 왜?
무명이었다가 보조작가였다가 기어이 잘 나가는 작가로 우뚝 선 엄마란 존재는 벽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사생아로 태어난 용호는 호랑이와 용이 등장하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꿈을 꾸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신처럼 살아갈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부도 별로고 삼수끝에 겨우 대학에 들어가고 스물 아홉이 될 때까지 취업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태몽이 아니었다.
강남에 우뚝 서있는 하리팰에 입주한 것도 엄마의 수입덕이었고 백수로 엄마 카드를 쓰는
혜택역시 자신의 노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삐딱해진 것일까. 글 쓰는 일 외에는 모두 젬병인
엄마와는 그저 데면데면을 넘어서 앙숙같은 사이였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엄마를 보필하던 오혜진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오고 난 후
용호의 인생은 갑자기 달라진다. 엄마가 쓰기 시작한 작품을 완성해달라니.
백일장에서조차 상을 타본적도 없는 자신에게 말이다.
그래서 같은 대학을 다녔던 예전의 연인 장현에게 도움을 청했다. 문학동아리에서 가장
글 잘쓰던 아이였다. 치매인 엄마를 간병하느라 휴학이 길어진 장현에게 돈은 유용할 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작품은 쓰는 족족 통과되었고 돈은 입금되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재능이 있었던걸까. 용호는 슬슬 자신의 무능이 의심스러워졌다.
실제 나는 태몽처럼 날아오를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어줍지 않은 생각이 들 무렵
엄마의 실종에 대한 단서가 나왔다.
사이비 종교집단같은 이상한 곳에서 엄마의 과거가 있었고 아마 실종에도 그 이상한 절이
연관이 있는것 같았다. '광혜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엄마는 그 곳을 오래전부터 알았었고 꽤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었다. 수상한 스님 전성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소설처럼 말해주었지만 정작 용호 엄마의 행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오래전 독자들을 감동으로 이끌었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같은 실종된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처럼 시작했지만 정작 '몰래카메라'같은 반전이 숨어 있는 소설이다.
잘 못나가는 못난이 딸에 치매엄마에게 발이 붙들려 휴학생으로 살아가는 장현에
역시 잘 못나가는 대역배우까지 그야말로 마이너들의 신세한탄같은 소설같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따뜻한 감동으로 잘 마무리된 소설이다. 다만 앞서 활기찬 전개에
비해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은 퍽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