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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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에 대해서 남자는 모르겠지만 여자에게는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왜 이런 단언을 했는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답이 될 것이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명함이 생긴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축복을 위해 아나운서인 저자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해왔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도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노력에 열매를 거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곳에 오르기 위한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고운 모습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왔던 저자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필수가 아니었던 임신을 결정하기까지의 여정이 잘 그려졌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결혼과 임신과 출산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다.

낼 모래 마흔이 될 우리 딸의 경우에도 그렇고 이제 당연했던 그 일들이 선택이 되었다.

세상은 살기좋아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길에 걸림돌은 더 많아졌다는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월급을 다 모아도 집값 따라잡기 힘들고 셋집을 전전하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것도 싫고 그나마 겨우 잡은 직장도 임신이나 출산으로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모든 여정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 험난해 보이고 실제 더 큰 희생이 강요되기 때문에

시집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아지를 선택한 딸아이에게 결혼을 강추하기 어렵다.

아마 저자도 그랬을 것이다. 결혼까지는 모르지만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기 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난임으로 고생하고 과배란 부작용으로 몸 상하고 결국 아이를 가지는데 성공했지만

열 달을 키워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먹덧으로 고생하고 소양증으로 피를 보는 과정들.

아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기뻤고 기대했지만 임신과정도 출산과정도 참 힘들었던게 떠올랐다.

그래도 인간은 쉽게 잘 잊는 좋은 버릇이 있어서 둘 째, 세 째를 낳는다고 하던가.

 

아이를 낳고 찾아오는 우울증이 가장 무서웠던 것 같다. 내 속으로 낳아놓은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데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하고 싶은 마음. 되돌리고 싶은 어거지. 자꾸 눈물이 났던 그 시간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더운 물에 마른 미역을 넣으면 잘 불어나듯 자꾸 생생히 살아났다. 그나마 저자만큼 지독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여정을 생생하게, 가슴아프게 그린 이 책이 앞으로 그 길을 선택하게 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만큼 너무 아프고 생생해서.

그리고 출산율 최저국가라는 딱지를 뗄 정책이 너무 허접해서.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판에 등장할 많은 허접한 정책들 앞에서 제발 이 책을 좀 읽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그래야 등돌렸던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쓰러져가는 국가의 기둥을 붙잡을 수 있을테니까.

 

단순한 임신, 육아기가 아닌 전쟁일기 같아서 마음 아팠다.

하지만 잘 일어나서 이렇게 세상에 잘 살아가고 있다고 선언하는 책 같아서 안심이 됐다.

잘 하고 싶었던 일들, 더 많이 잘하고 더 성장하고 더 빛나길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가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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