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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평점 :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동산을 빼놓고는 경제발전의 흐름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땅덩어리가 작아서였을까. 아마 전세계적으로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일
것이다. 땅은 작고 사람은 많으니 위로 위로 올릴 수밖에 없었을테니.
나역시 서울 가장 중심에 있는 동네에 아파트에 살고 있다. 저자가 언젠가 필요한 서류때문에 떼어봤다는 초본속에 부모님의 이사 이력이 빼곡했다고 하듯 나역시 그에 못지 않게 어린시절 수없는 이사가 이어졌었다. 태어난 동네 근처에서 가장 많은 이사가 있었고 그러고보니 지금 사는 집도 태어난 동네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이다. 사람에게는 오래 살아온 동네의 편함을 기억하는 것 같다. 이사 횟수가 지겨워서인지 나는 중년에 들어서 붙박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산을 넘어가는 것같은 사이클과 마주하게 된다. 평지를 걷다가 산등성이에 오르기도 하고 정상이다 싶었지만 까마득한 아래고 추락하기도 하는.
저자의 부모님 역시 그런 길들을 걸었던 것 같다. 울산의 공업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동산업을 하던 이모부의 권유로 전혀 새로운 길로 들어서 이후 엄청난 돈을 벌게 된 사연은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았다.
나도 기억이 난다. 내가 태어난 동네는 지금도 서울에서 여전히 개발이 안되고 있는 노른자위 땅이라 그전 모습이 있는 편인데 허허벌판이었던 서울에 아파트가 지어지기전 한창 지어졌던 집들은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이었다. 화곡동 큰집에 가면 똑같은 연립주택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집찾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런 주택들이 '집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지은 주택이었다.
건설기술도 좋지 않았던 시절에 지어지기도 했고 후딱 지어 매매를 하고 다른 곳에 또 집을 지어야 했던 집장사들의 집들은 대체로 허술했던 것 같다.
지금도 부자동네로 인식되는 올림픽아파트선수촌 40평대 이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만큼 돈을 벌었던 아버지가 부동산 개발이 어려운 지역에 땅을 무리하게 구입하면서 추락이 시작 되었던 것 같다. 하필 경제상황동 좋지 않았고 이율도 높아 이자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결국 올림픽선수촌아파트를 급하게 팔면서도 언젠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말이 가슴아팠다. 거금을 주고 샀던 화려한 가구를 좁은 집으로 이사를 연이어 하면서도 처분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희망'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저자는 학자금대출에 알바몬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힘든 학창생활을 하고 지금 청년 임대주택에 이르는 동안의 고단함을 담담히 그려냈다. 글로만이 아니고 부모님의 부동산 역사를 영화를 찍은 것이다.
추락이후 엄마의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이제 더 이상 가장으로서의 위엄은 떨어져 버린 아버지와 불화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왜 없었을까.
그럼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부모님이 걸어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가족간에 다시 사랑의 끈이 이어졌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
내 딸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대이고 직장을 다니지만 역시 가난한 부모때문에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내가 어렵게 마련한 집에서 여전히 캉가루새끼처럼 도무지 떠날 기미가 없긴 하지만 적어도 임대기간이 끝나면 다시 집을 알아봐야 하는 고생은 면하게 해준것 같아 다행이다.
'시작은 창대했고 마무리는 미약했던'부모님의 삶의 여정을 어렵게 그려낸 딸의 정성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독립영화뿐만이 아니라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큰 감독이 되기를 응원해본다. 그리고 이제 하늘나라로 가신 저자의 엄마도 편한 보금자리에서 지냈으면 싶었다. 한국 부동산의 역사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