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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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란 정의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그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고 나온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흔한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마음이 젊으면 늙은게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인간은 어차피 나이가 들고

늙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막연하게 노인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철을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으려나. 65세 이상의 나이를 먹으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런 기준이라고 하면 나는 2~3년 후 무임승차가 가능한 이른바 노인이 된다. 예전에 박완서가 쓴 에세이에 무임승차가 가능한 나이가 되어도 그냥 표를 끊어 탔다고 했다. 아직 노인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교통비가 자꾸 올라가니 2~3년 후 호기롭게 지하철요금을 내고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몸이 예전같지 않아지고 먹어야 할 약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늙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꽤 서글퍼진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아흔 둘 나카무라 여사의 늙어감을 감사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편안해지고 적당히 포기하면서도 억울해지지 않는 마음이 들거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늙음도 그저 인생의 편안한 지점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해도 쳐지는 피부와 주름진 얼굴을 다 감출수는 없을 것이고 무릎이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는 몸의 늙음은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런 점까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예전에 우리 풍속으로는 노인을 공경하고 돕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는 요즘에는 많아지는 노령인구가 그닥 반갑지 않은 숙제가 된다. 생산인구에서 소외되고 이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견인할 젊은 세대들은 줄어들고 있으니 과거의 공경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뿐이다.

 

 

가난한 부모밑에 자라면서 많은 걸 포기하고 어린 자식들에게 헌신했던 우리 세대는 노후대책이 부족한 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아두었던 연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어디가서 돈을 벌 수도 없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제 자식들에게 손벌리고 사는 꼴만은 면하자고 다들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노인이라는 말은 나와 상관이 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평생 노인이 되지 않을 것같이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잔치도 하지 않을 환갑은 벌써 지났고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내 나이는 청춘이라고 부르짖는다.

과연 나는 노인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카무라 할머니처럼 아흔 언저리까지 살 자신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다. 죽는 것은 순서가 없으니 내 맘대로 죽을 나이를 결정하지도 못하겠지만 평생 열심히 살아온 나카무라 할머니처럼 죽음도 편안한 안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나도 그렇게 긍정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싶다.

늙어서 불안하기 보다는 기후위기니 경제위기니 하는 세상사가 불안하다.

나야 상관없는데 내 자식들은 어떤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불안함. 아마 내 세대 사람들은 거의 이런 비슷한 불안감이 있을 것 같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잠시 전쟁을 겪고 가난을 이겨낸 나카무라 할머니의 평정심을 보니 잠시 일렁이던 파도가 잠잠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잘 늙어가고, 아니 잘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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