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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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동네꼬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만나 물장난을 치고 놀고 하는 새로운 놀이터였다. 여자, 남자 구분이 없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혼탕하는 일은 없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남녀의 차이나 성의 구분같은 것을 알게되는 것일까.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4,5학년쯤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요즘에는 더 어려져서 유치원때부터 알게되는 것 같다. 만 5세가 넘으면 혼탕이 안된다고 하더니 이제 만4세로 낮아졌단다.

너무 일찍 목욕탕 금지가 된다는 것이 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되는 것일까.

 


 

어려서 받은 성교육도 사실은 엉성하기 그지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요즘 아이들은 성에 대해 쉽게 노출되고 쉽게 이해하는 것 같다. 또래보다 덩치가 컸던 우주가 호모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은 것은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놀이에 관심이 없고 좀더 창조적인 놀이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남자아이를 능가하는 신체능력도 한 몫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어려서 그런 놀림을 한 기억은 없는데 아뭏든 여간내기들이 아니다. 어른 찜쪄먹는 아이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고보니.

 


 

그런 우주에게 더 편한 친구들은 남자들이었다. 너무 일찍 여자로서의 성징이 나타나 군침을 흘리는 남자들이 꼬여드는 것에 익숙했던 우주였기에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일찍 남자를 알아버린 선미가 임신을 하자 보호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아이들 말대로 동성애자적인 성향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시작된 선미와의 동행은 왠지 늘 상대방의 등만을 바라보는 관계처럼 보인다.

선미는 우주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를 찾아 집을 떠났었다.

선미가 떠난 집을 지키면서 새로운 집을 만들어가던 우주는 어느 날 '헤어질 결심'을

한다. 선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주를 말리지도 않고 적당히 나눈 세간을 들고 떠났다.

 

우주는 이제 선미가 없는 자신만의 집에 들어간다.

선미를 위해 원하지도 않았던 직업을 가졌던 우주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도 찾는다.

삐걱거리던 우주의 삶이 정리된 것 같은데 뭔가 허전하다.

틈틈히 선미가 떠오른다. 그건 누구에게나 그렇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않는가. 등만 바라보는 그런 관계는 벌써 끝냈어야 했다.

우주가 이성의 연인을 만날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동성이든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상대였든 일방적인 관계는 옳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선미와 살던 집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거기에 두고 온 것인지 제목이 가리키는 상실감이 좀 아쉽다. 우주야 이름처럼 먼 곳을 바라보고 너만의 집을 제대로 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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