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참 오래전이다.
마음이 푸근해지거나 속이 시원한 경험은 많았다. 판타지같은 내용때문이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가 한 방 먹은 기분이다.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 심지어 바위같은 것들에도 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꽃혼은 정말 있다고 믿는다. 다만 혼탁한 인간의 영혼들이 그걸
발견하지 못할뿐이라고. 78년 전 우리땅에서 일어났던 가슴아프고 신비한 사건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아쟁을 잘 탔던 은조가 요리집으로 불려가 연주를 하는 순간 창포꽃이 피어나고 춤을
추는 장면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은조는 그런 능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아이를 품은 몸이었지만 은조는 진주의 갑부이면서 뒤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준다고
소문이 났던 윤송의 집에 의탁하게 된다. 윤송은 첫눈에 은조에게 반했고 갈곳없는
은조에게 자신의 집을 제공하지만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녀를 흠모한다.
대신 그의 집의 하녀였던 옥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쏟아붓는다.

세월이 흘러 현재에 이른 진주에서는 오래전 불타 없어진 길 모퉁이집을 새단장하고
도유과 서휘가 이사를 왔다. 마을의 꽃집에는 마디와 마린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모퉁이 집에서는 매일 그 꽃집에서 절화를 주문했고 마디와 마린이 배달을 맡는다.
마린을 대신해 처음 모퉁이집에 갔던 마디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마디는 예술대학에서 아쟁을 전공한 음악가로 제자에게 아쟁을 가르치고 틈틈히
부모를 도와드리는 중이다. 그런 마디를 지켜보는 도유. 오래전부터 마디를 알아왔던 것
처럼 그녀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데, 그런 도유와의 첫 만남에 마디는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모퉁이집 뜰안은 온통 꽃 천지다. 마디는 그 꽃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춤을 추는 신기한
현장을 보게 되는데 마디는 어려서부터 꽃이나 나무와 대화를 하는 능력이 있었다.
도유역시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둘은 마디가 12살 무렵 할머니가 살고 있는 천녀도
에서 처음 만났었다. 하지만 마디는 큰 사고를 당하면서 당시의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꽃혼의 기다림이 통했던가 그리운 마디와 도유는 그 때처럼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래전 은조가 사랑했던 남자 모구헌은 일제경찰로 위장하고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남자였고 배속 아이의 아버지였다. 오히려 독립운동가처럼 위장한 윤송은 일본사람으로
조선인 흉내를 낸 악인이다. 결국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윤송도 은조도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과 악연은 대를 이어 도유와 마디, 아서에게 이르는데...
저자의 고향인 진주가 배경이라 진주 곳곳의 풍경이 담긴 이 소설은 그저 판타지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가슴아픈 역사와 슬픈인연들이 얽힌 아름다운 소설이다.
모든 인연들의 비밀이 밝혀지고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기다림이 어찌나 가슴아프고 아름답던지.
멀리 떠난 꽃혼 해눈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씨와 만나 한을 풀었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