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다시 채우고 - 삶이 어엿함을 잃지 않도록 내 속에 말을 담고, 내 안의 생각을 비워내다
이가경 지음 / 북스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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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은 나는 살림살이중에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빨리 채우고 싶어진다.

섬에서 오래살다보니 더욱 조급한 생각이 들어서 일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가난을

알다보니 게이지의 눈금이 아래로 떨어지면 불안해지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고에는 여분의 살림살이들이 그득하다. 쌀이며 아이들 사료며 비누에

통조림까지 넉넉히 채워둬야 마음이 놓이는데 나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또 정신없는 냉장고를 맘먹고 정리해서 훤해지면 그 또한 마음이 청결해진다.

그러고보니 채우는것 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알게된다.

집안에 쓰레기를 쟁여두는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우는 일이 더 어려운 모양이다.

 

 

사계절중 여름을 가장 싫어하고 봄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가을이 더 좋은 것 같다. 다 거두어들인 들판을 보는 여유와 강렬한 여름을 견디고 이제는 휴식기에 접어드는 낙엽들을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나와 겹치기 때문일까. 그동안 쉬지않고 잘 살아 왔으니 이제 좀 쉬어도 좋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다독거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쉬운 일도 있지만 어려운 일들도 있다. 어려서는 어른이 되어

대접받는 일들이 기다려지더니 이제는 어른노릇도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 사람이야 어려서 용서도 되지만 연륜있는 윗사람들은 삶의 모범이 되야하고

넉넉함을 보여줘야 하니 결코 쉽지 않다는걸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게된다.

그리고 '말'의 무거움도. 언제부터인가 제법 의로운 마음으로 건넸던 말들이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깨닫고는 점점 말 건네는 걸 주저하게 된다.

내가 누구에겐가 '조언'이란걸 건넬만큼 잘 살아왔던가. 오히려 말이 무기가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더 많이 주었을 것이다.

 

 

자신감을 넘어 오지랖이 지나친 상사를 만나 맘고생을 하는 우리 딸은 상대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 아마 상대는 자신의 말이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들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되는지를 알게 되면 입을 좀 다물텐데.

언젠가 자신이 평생 내뱉은 말들을 다 주워담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던가.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싯구가 절로 떠오른다.

 

편한 마음으로 선택한 에세이라 부담없이 읽어가다가 오히려 저자의 양력을 살펴보게

되었다. 어느정도 살면 삶에 대한 시각이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일까.

아쉽게도 자세한 정보는 없으나 저서중 마흔에 대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나이는

지난 것 같다. 향기 좋은 차를 앞에두고 맘맞는 지인과 마음을 나누는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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