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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평점 :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남성중심의 세계였던 경찰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책을 읽기 전부터 짐작이 되었고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은 명예퇴직을 하고 제주도에서 서재를 꾸미고 살아간다는 전직 형사 박미옥!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보리차를 끓여
남자 상시의 책상에 놓아주던 시절이었다. 대학 할아버지를 나와 그나마 이름값좀
한다는 회사에 들어가서도 결혼하면 퇴직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던 시절.
그 때에 비하면 분명 직장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겠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여자형사기동대 1기로 대한민국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된 박미옥의 지나온 시간들을
보노라니 책 한권이 부족하다 싶다. 첫 사회생활은 주로 앞서 간 선배들의 발자욱을
따라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길에 첫발자욱을 뗐을 때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까. 하지만 박미옥의 바탕은 깡과 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성중심의 경찰세상에 들어가니 쉽게 따당하고 술안주거리로 씹히던 시절 얼마나
수치스럽고 힘들었을까. 그걸 견딘것은 그녀의 깡과 타고난 소명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 초짜시절을 거쳐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강력계반장을 지내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직무수행을 위해 법의학까지 공부한 열정경찰이기도 했다.
쪽팔리고 무너지고 억울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럼에도 월급에는 야단맞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는 과장님의 한마디에는 인생선배의 철학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 좋은 상사를 만난 것도 그녀를 오랫동안 힘든 형사로 지내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해결한 사건의 에피소드를 넘어서 어떨때에는 피해자로 부터, 혹은
가해자에게까지 배운 점이 많았다는 박미옥의 가슴속에는 어려서부터 읽은 책처럼
깊은 울림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실적 위주의 경찰이 아닌 가슴 따뜻한 인간이 먼저
였다는 그녀의 진정성이 많은 피해자들에게 치유가 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범죄자들도
고개를 숙였던 것 같다.
자칫 우린 이런 유능한 경찰을 사찰로 빼앗길뻔했다.
어찌보면 경찰로 산 그 시간들도 수도자의 길과 같지 않았을까. 견디고 기다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런 수행자의 길.
이제 박미옥의 울안에는 책이 가득한 섬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다가 울다가
그렇게 묵어간다는 그곳에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책을 써서 그녀의 서재가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판사출신, 의사출신의 작가도 있는데 경찰출신의 작가도 멋지지 않은가.
제주에서 멀지 않은 섬에서 나는 딱히 살아온 에피소드도 쓰지 못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