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박이선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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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사등이라는 곳은 자염을 만드는 염부들의 마을이다.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올려 햇살로 말려 만드는 천일염만 알다가 더 힘든

작업으로 소금을 만드는 염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류에게 소금은 금보다도 귀하고 쌀보다도 귀한 재료이다.

영어 샐러리(salary)가 솔트(salt)에서 왔다. 과거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급해서

전래가 된 언어라고 한다. 그만큼 환금성이 뛰어난 소금을 만드는 염부는 가장 극한

직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염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염길은 뛰어난 머리와 능력으로 고창고보를 나와

전주사범으로 진학하여 교사가 된다. 염부의 집에서 선생이 나오다니 경사가 났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제대로 된 교육이나 능력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더구나 가난한 염부의 자식이었던 염길은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의 추천을 받아

일본사람이 운영하던 고창시내에 있던 국일여관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어린 아들 마사토를 돌보며 숙식까지 해결하던 염길은 여관집 큰딸 아케미를

만나게 된다. 방학이라 광주에서 여고를 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열 일곱의 염길과 열 여섯의 아케미의 운명같은 만남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전쟁 막바지에 이른 일본은 조선을 더 압박하고 징용이나 위안부까지 끌고가는 상황이

되고 아케미의 외삼촌 카이토는 본국에서 유곽집을 전전하던 솜씨로 고창에서 요릿집을

열고 게이샤와 기생을 끌어들여 돈을 번다. 자고로 고창은 신재효의 고향이 아니던가.

그 사이 염길은 사범학교를 나와 남원 운봉국민학교로 아케미는 경성사범을 나와 전주

풍남국민학교에 교사가 된다. 우연히 전주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두 사람.

하지만 둘은 일본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국민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둘은 여수여행을 하면서 깊은 관계를 갖게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결국 항복을 하고 조선에 있던 일본인들은

급하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아케미 가족들 역시 일본으로 향한다.

아케미는 이미 염길의 아이를 임신하였고 조선에 남아 그의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면 조선의 광복이 둘의 사랑을 갈라놓고 만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일본이 떠난 조선은 좌우 대립으로 어수선했고 그 와중에 좌익이었던 사범학교

동창으로 인해 염길은 좌익으로 의심받게 되고 결국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대단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난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는 장면을 보면서 전쟁과 사상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케된다.

운명은 때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로 데려가고 둘은 결국 비극적인 이별을 한다.

이후 아케미가 낳은 딸은 어머니의 고향 고창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지척에 둔 인연을 몰라보고 다시 일본으로 향한다.

 

고창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그대로 다가온다. 저자의 노력이 아주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마치 고창이 고향인 것처럼 그 시대 고창과 전주의 모습들을 잘 담아냈다.

더구나 내가 살고 있는 여수의 모습까지 제대로 그려낸 것을 보면 인연이 있었던지

자료를 섬세하게 모았던 것 같다.

고창 신재효 문학상 수상작답게 고창과 역사를 잘 담아낸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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