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헬레라 로스'를 검색했다. 분명 그녀는 책속에만 있는
인물이 아니고 실제했던 인물이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책속 인물로만 남겨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실제했던 인물로 되살려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고통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인하는 일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죽음이 다가오기엔 너무 이른 나이, 서른 둘의 헬레나는 잘나가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었고 많은 돈을 벌었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쓰지 않으면 배겨날 수 가 없어 썼을 뿐이다.
그녀에겐 꼭 지켜할 규칙들이 있었고 띠끌 하나도 없이 완벽한 환경을 가져야 했다.
때문에 그녀 곁의 사람들은 그녀를 힘들어했고 누군가는 경멸하기도 했다.
암이 그녀를 찾아오기전 이미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난 존재였다. 한 때는 사랑했던 남자, 남편과 죽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뿐인 딸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 그녀는 죽었다.
이미 4년 전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죽음은 잊지 못했고 자신을 용서하지도 못했다.
고작 3개월이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녀는 쓰던 작품을 중단하고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남기기 위해 대리작가를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작품을 쓰기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고
순전히 자신이 그 글을 써내려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작품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마르카 반틀리 그녀가 헬레나의 대리작가여야 했다.
서로가 적대적 메일을 주고받을만큼 증오스러운 경쟁자에게 마지막 글을 맡기겠다고? 왜?
사실 헬레나는 그녀의 글을 추앙했다. 비록 감각을 자극하는 외설적인 작품이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생명이 느껴졌다. 그래서 헬레나의 마지막 작품은 그녀가 써야한다.
하지만 그녀가 강적인 헬레나의 요청을 수락할까? 자신의 요청을 멋지게 거절해주기 위해
그녀, 아니 그가 직접 헬레나를 찾아왔다. 마르카 반틀리는 남자였다. 여성작가로 위장하여
작품을 써왔던.
오십 초반의 추레한 남자. 헬레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신의 마지막 글을
완성해줄 이 남자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마르카 반틀리, 아니 마크는 헬레나의 간절함을
알아봤다. 멋지게 거절해줄 심산에서 어떻게든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해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되었다. 물론 헬레나가 3개월의 시한부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기지 않으면 안되는 헬레나의 고통 가득한 마지막 글이 있음을 알아봤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인 엄마를 두었지만 반목하던 어린 헬레나는 글을 써야만 했었다.
자신에게 가득 고인 뭔가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만큼 글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인간관계에도 결벽증이 있을만큼 고독했던 헬레나에게 나타난 사이먼이란 남자.
그녀의 괴팍함까지 사랑한다던 남자와 결혼하고 생각지 못했던 딸까지 얻게된 헬레나.
하지만 그녀는 육아가 두렵고 귀찮았다. 자신은 조용하게 글을 써야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먼은 그런 그녀를 경멸하기 시작하고 둘 사이는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을 써야만 헬레나는 진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과연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체에 다가갈수록 두려웠다. 어떤 사건이기에 냉정하고 이성적인 헬레나를
고통속에 가두었을까.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재능을 가진 라이벌에게 마지막
작업을 맡길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될수록 헬레나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 같아
책을 넘기는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난 결국 마크가 헬레나의 마지막 글을 완성시킨 것처럼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내렸다. 헬레나 로스 (1984~2017)
안녕 헬레나 당신의 고통이 끝나고 사랑하는 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