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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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태풍은 그닥 무섭지 않다. 추석무렵 올라오는 태풍은 세력이 강해서

늘 걱정인데 추석무렵 올라오던 태풍이 그럭저럭 지나가고 연이어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며칠 째 미친듯 불어대는 바람탓에 마당으로 나가는 일 조차 부담스럽다.

지금도 창밖으로 무시무시한 바람의 포효소리가 들리고 이중으로 잠긴 창을 뚫고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든다.

 


 

'방어가 제철'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보면서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섬에서는 방어가 찬밥인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주도며 남해에서는 비싼 몸값이라는데 여기서는 잡어취급이다.

고기도 사는 곳을 잘 만나고 시절을 잘 만나야 대접받는 모양이다.

실린 단편 세 작품 모두 쓸쓸했다.

 


 

같은 카페 아르바이트 동료로 만난 소애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화자가 '언니'에게

가만히 말을 거는 형식이다. 소애는 작은 애지만 누구나 좋아할만큼 일도 잘하고

강단이 있는 아이라고.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생일상을 정성껏 준비하고 소애와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그 밤 '언니'의 제삿상을 차린다.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음식, 그 음식은 다시 망자의 젯밥이 되는 슬픈 하루의

모습이 애닯다.

 


 

반찬가게를 하던 엄마가 암으로 죽어가는 모습이 왜 이리 아플까. 내 모습이 될수도 있으니까.  아버지 없이 아들과 딸을 키운 엄마는 아들의 죽음 이후 술을 달고 산다.

그리고 기어이 아들 곁으로 떠나고 만다. 울엄마도 그랬다. 외아들과 막내딸을 차례로 보내고 나서 못마시던 술을 마셨고 지금은 가슴에 아픔을 이기지 못해 기억을 지우는 병을 선택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이처럼 실감날 수없다.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오빠와 오빠의 친구, 먼저 간 오빠와 엄마를 가슴에 묻고 반찬가게를 하던 화자는 오랜만에 연락을 한 오빠 친구 정오와 함께 방어를 먹는다. 그렇게 3년동안 철마다 만나 음식을 나누다가 어린시절 빌렸던 학원비를 내밀며 이별을 고한다. '알고 있었어요, 나'. 뭘 알고 있었다는 걸까.

 


 

나경은 이혼 후 오래된 빌라 302호도 이사온다. 집주인 숙분의 행동이 다소 이상했다.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집을 알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101호로 이사온 단심 할머니. 숙분씨와 친구인 그녀는 음식을 해서 이웃들과 나누고 나경의 꽁꽁 언 마음도 온기로 채워진다.

숙분이 사고로 실려가게 되고 그동안 왜 자신을 그렇게 지켜봐왔는지 밝혀지게 된다.

 

'안윤'이란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연륜이기에 이렇게 깊을까.

검색을 해봐도 자세한 이력을 알 수가 없다.

뒷편에 실린 평론가의 말처럼 음식에 진심인 모양이다. 방어가 차려진 상에 올라간 반찬들이며 소애를 위해 차린 생일상의 메뉴까지 화면을 보는 것처럼 싱싱했다.

 

우연인지 화자 모두 홀로 살아가는 여자들이다. 떠나간 '언니'를 그리워하는 여자.

먼저간 엄마와 오빠를 잊지 못하고 연애도 하지 않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여자.

이혼 후 이사온 집 세탁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여자.

가을이 오는 바람소리가 너무 당당해서 이 소설이 더 쓸쓸한지도 모르겠다.

담담하면서도 아리고 조용히 스며드는 슬픔때문에 오히려 아름답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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