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쯤이면 이런 소설 한편쯤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
유독 다사다난의 역사속 소용돌이에서 숨차게 살아왔던 그들의 이야기를.
아마 저자는 자신이 지나온 그 길들에 대해, 그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전쟁 직후 아직은 막막하고 가난하고 불안정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55년생 전후로 태어난 아이들. 소설속 주인공 인호는 시청 공무원인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이었다. 이른 바 첩의 아들. 그래서일까 평생 그는 그늘 밑에 숨는것이 더 편했다.

문창이라는 소도시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던 소년 소녀들. 누군가는 종이었다가 재벌이 된
할아버지를 둔 아이였고 술집을 해서 크게 돈을 번 집안의 아들도 있었다.
그리고 유독 전교에서 일,이들을 다투던 장윤태와 한요섭은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고
세월이 지나 공안검사가 된 윤태와 학창시절 이미 등단을 한 요섭은 그저 그런 대필작가로
살아간다. 그리고 일본에 밀항했다 돈을 벌어 돌아온 창기와 아주 일찌감치 주먹세계로
빠진 광춘, 후일 광춘의 아내가 된 영란과 인호의 짝사랑이었던 미혜.

4.19와 5.16을 거쳐 독재시대를 맞은 아이들은 각기 선택한 길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미선이란 소녀는 아예 어려서 폐병으로 죽었고 광춘이는 건달들을 잡아들인 삼청교육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반공소년이었던 윤태는 공안검사가 되어 한 때 친구라고 여겼던
민주투사들을 잡아들인다. 결국 각자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대한 답은 후일 역사가 판단하겠지.
이 소설의 주인공 인호는 태생부터가 어두워서 인지 늘 그림자같은 삶을 살게 된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얘기 잘 들어주는 친구라고 생각했고 모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곤 했다.
그럴수록 인호의 삶은 더 무거워졌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기에 사랑했던 여자도
붙잡지 않았고 이러저러한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찬란하다고 할 삶을 살았고 누군가는 이름없이 떠난 이 이야기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겹친다. 내가 굳이 누군가를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인호였을 것이다.
제주출신 고대룡이 누구인지는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 누구든 그를 떠올릴 것이다.
조금쯤은 우울했고 가끔은 추억에 젖었으며 먼저 떠난 친구들을 위한 서사시 한 편이
큰 위안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