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디에고 데 란다 지음, 송영복 편역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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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까딴이란 단어를 보면 오래전 조선말기 멕시코 유까딴 반도에 이민을 떠났던 우리 민족이 생각난다. 더운 날씨와 열약한 환경에서 가시박힌 선인장을 수확하던 모습들.

거의 5백년 전 유까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 책을 펴기전 든 생각이다.

 


 

일단 엄청난 분량의 보고서를 들고서 이 책을 발굴하고 번역하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애를 쓴 송영복 교수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정말 힘든

여정이 있었다고 하니 하나 하나 주를 달아 해석내놓은 글까지도 함부로 넘길 수가 없었다.

 


 

남미 유까딴 반도에 처음 닻을 내린 사람들은 에스빠냐(지금의 스페인) 성직자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전에 모험자들이 발견하고 첫발을 디뎠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착은 바로 란다같은 신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우상을 숭배하던 원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압박하여 기독교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란다는 아주 귀중한 사료를 남긴 셈이다.

 


 

미개인이라고 생각될만큼 우상을 숭배하고 인육을 신께 바치거나 먹기도 하는 원주민들에게도 나름의 법이 존재했다는 사싫은 놀랍다. 어디에서든 다소는 과격한 인간들에게는 '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간통죄의 경우 돌을 떨어뜨려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거나 여자의 경우라면 처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여자의 인권을 존중했다는 뜻일까.

 


 

원주민(인디오)들의 나쁜 습관에서는 당연히 우상숭배의 관습을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해석했을 것이고 배우자를 쉽게 버린다거나 술에 취하는 모습같은 것은 남미인 특유의 성격이 그 때에도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포교를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여 고발하게 하고 제사장을 압박했다는 사실은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 보면 에스뺘냐의 통치자들은 유까딴 반도의 인디오들을 겁박하거나 고문하여 자신의 식민지 사람으로 만든, 말하자면 침략자일 뿐이다.

우리가 신비롭게 생각하는 마야의 문명이나 살아가는 모습들이 이렇게 남겨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란다의 원문은 사라져 버렸지만 이렇게 발췌본이라도 남아 마야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어 후세의 유까딴 사람들은 한편으로 감사할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이 책이 우리나라의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같은 책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어찌보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역사서 같기도 하고 보고서 같기도 한 란다의 견문록으로 사라진 마야의 시간을 여행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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