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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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한숨이 나왔다. 마치 내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분명 내 가족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는데 뭔가 억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살아온 부모와 밑으로 주르르 있었던 동생들.

 


 

퇴직후 스위스로 여행을 꿈꿨던 부모에게 4남매는 자랑이었고 행복이었다.

오십 언저리가 된 큰 아들은 제일 좋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고 큰 딸은 초등학교

교사, 제일 정많고 착한 세째 딸은 보육교사, 막내는 공무원 시험 공부중이었다.

큰아들과 큰딸은 나름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세째 딸이 이혼을 했고 막내 아들놈은

여전히 고시준비생으로 제 몫을 하고 살지 답답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하고 있던 중에 엄마가 쓰러졌다.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몸마저 부자연스러워졌고 고아였던 남편을 잘 내조했던

아내를 사랑했던 남편은 그런 아내를 극진하게 돌본다. 하지만 남편도 늙은 몸.

이제는 더 이상 아내를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혼하고 아들 하나와 지하셋방에

살던 세째 딸을 불러들인다. 다른 형제들도 부모를 돌볼 형편이 안되니 할 수 없이

세째인 은희가 그 짐을 대신 짊어지게 된다.

 

자기 하나만 희생하면 남은 가족들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만 짐을

지우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다른 형제들 때문에 은희는 서서히 지쳐간다.

잔소리를 해대는 아버지와 이제 배설물까지 받아내야 하는 자신이 서글퍼진다.

그래서 술을 시작했다. 동생 친구인 광수와도 친해졌다. 어려서 캠코더를 훔쳐갔다고

어울리지 말라고 했던 세탁소집 아들 광수. 그도 이혼을 하고 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중이니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아버지가 같은 날 죽음을 맞는다. 막내 아들 현기가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를 했다. 돌이켜보니 모두 조금씩은 수상했다.

의사인 아들은 불편한 부모를 돌보지 않는 큰아들을 원망하는 잔소리에 질려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어했고 큰 딸 역시 음주운전으로 임산부를 친 아들 때문에 부모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가장역할까지 떠맡았기에 아들의 합의금이 필요했었다.

 


 

부모의 눈에는 자식 잘 키웠고 나름 잘 산다고 생각했지만 부모에게 말을 못해서

그렇지 다들 삶의 고난이 있었다. 이제는 짐이 되어버린 부모가 지긋지긋 해졌다.

그래서 형제들이 합심해서 부모를 죽였을까.

 

안방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건너방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더라고 몸도 마음도

불편한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자식들이 원망스럽다가도 각자의 사연을

보면 비난을 할 수도 없다.

나도 그랬다. 내가 자식에게 짐을 되는 순간 스스로 삶을 마감하겠다고.

하지만 그럴 힘도 없고 정신도 없어진다면 어쩌나.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 대해 이렇게 까지 리얼하게 그려내다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내 사연도 이 소설 한 권을 될텐데.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가 그나마 속 썩이지 않고 7순 되던 해 돌아가신게 그나마

다행이었고 이제 치매끼가 있는 엄마가 걱정스럽다.

 

나는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는데 입찬 소리 못한다고 내가 자식에게

짐이 되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법이 있나.

핏줄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기대던 순간도 있으련만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생생히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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