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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평점 :
흔히 사람이 죽으면 별이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나는 이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특히 이 시대를 빛냈던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면 별이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이 나라에 태어나 가난하고 척박했던 마음을 채워주던 석학 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문학계의 거두이지만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왔고 자유롭지만 세상에 엄격했던 문학가이고 영성가이며 리더로서의 자질도 너무 훌륭했던 이어령!
이제 그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다면 남긴 그의 글로나 만날 수밖에.
그가 인터뷰했던 어느 화면에서 죽음에 관한 말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나 언젠가 꼭 가게 되는 그 길. 그 길에서 그는 그립던 딸의 손을 잡고 웃고 있을까.
꽃잎이 휘날닐 것 같은 그 길에서 이제는 아픔을 내려놓고 우둔한 사람들의 운명도
걱정말고 끝없이 행복하기를..
그의 글과 말에는 엄격함과 자애로움과 지혜가 있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손주를 둔 할아버지이기도 했던 그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는 매운 회초리 소리가 들린다.
이민아! 그의 자랑이었고 그의 근심이었고 그의 그리움이었던 딸.
몇 번의 결혼과 이별을 겪고 병까지 들어 힘들게 살다간 그 딸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죽음 앞에서는 불같은 아비의 사랑도 별 수 없어서.
아프다는 딸에게 해줄게 없어서 이제는 다른 세상에서 혼자 밥먹는 일도 미안하다는
아비의 절절한 아픔이 나를 때린다.
너무 영민했고 너무 예뻤던 딸. 이국 땅에서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았는데
그래서 찾아간 아비는 행복했었는데 그 헌팅턴 비치에 이제 아무도 없다.
이어령이 남긴 저서가 한 둘이겠는가.
이 시집은 딸을 보내고 느꼈던 아픔들을 담고 있다.
더불어 그가 평생 믿었던 신에 대한 믿음과 경의도 담겨있다.
딸을 먼저 데려간 신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영성은 빛을 잃지 않는다.
그가 근거없이 신을 경배할 사람이 아니어서 신에게 다소 소원한 나는 그의 이런
무조건이 부럽기도 하다. 내게 소중한 것을 앗아간 신일지라도 등 돌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담담한 일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 시집의 서문도 그가 떠나기 불과 나흘 전에 쓰여진 것이다.
다행이다. 남겨질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리할 시간들이 충분했을테니
잘 가셨겠구나...이제 그립던 딸과 못다한 정을 나눌 수 있겠구나.
오늘 밤 하늘 위 별들의 속삭임속에 어쩌면 그의 남은 이야기가 들릴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