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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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잘 살아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의 장례식에 가보면 안다.

속담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 이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를 보면

권력과 부를 누리는 정승집 하찮은 개가 죽어도 정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문객이

줄을 잇지만 정작 자신이 죽으면 이제 볼일이 없으니 장례식장이 썰렁하다는 얘기다.

정승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게 장례식에서 증명이 된 셈이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기 때문에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늘 영원불멸을 꿈꿨던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죽음이란 한 사람에게 소멸이고 세상의 끝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죽음이 닥칠 것이란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깊은 병으로 죽음을 향해서 가는 사람이지만

막상 죽음에 이르고 장례식을 치르는 순간에도 미처 실감을 하지 못한다.

 

마치 남의 일을 멀찍이 바라보는 것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절차가 지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죽은 사람의 부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세월이 갈 수록 흐려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움이 더 짙어지는 경우도 있다.

 

생후 7개월이었을 때,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고등학생때 엄마마저 잃은 남자.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늘 잠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말수를 줄이고 내면으로의 세상으로 그를 인도하는 촛불이었을 것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화가로 남은 한 남자의 장례식이 펼쳐지고 그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자상하지도 않았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같았었다.

 


 

어른이 된후 우연히 성령체험을 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된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그의 삶은 더 피폐하고 고독하고 아팠을 것이다. 때로는 맹목의 신념이

버겁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같이 말이 없었던 아들은 그저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숨을 멈추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만히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죽은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는 편지같은 글이다.

화가 박유승의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뒤틀린 몸으로 그림을 그렸던 여자.

박유승의 그림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자신의 고향에 세우고 싶었던 '천국미술관'에 걸릴 그림을 그리면서 마지막 가는 길에

흔적같은 걸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에겐가 위안이 되는 그림이 되길 바라면서.

 

글로 전하는 말보다 그림으로 전하는 말이 더 절절하게 와닿는다.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새처럼 이승의 고독을 잊고 훨훨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의 품으로

날아가기를 바란다. 누군가도 그랬다. 너무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작가가 언젠가 하늘에 있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나온다면 한번만이라도 '엄마'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노라고.

살면서 억울했던 일이며 일러바치고 싶었던 일을 엉엉 울며 일러바치고 품에 안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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