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 -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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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천하고 지난한 삶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혼을 울리는 재능을 알아보는 이를 만나면 때로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소리꾼은

그저 남의 집 잔치에나 불려다니고 전국을 떠도는 유랑민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여자 소리꾼은 관기나 후처 정도의 신분으로 여기고 누구나 따 먹을 수 있는

쉬운 꽃같이 여기기도 했으니 자신이 지닌 재능을 원망스럽게 여기지 않았을까.

 

허금파! 조선 후기 금기를 깬 최초의 명창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명창의 반열에 오른

여인. 멀건 호박죽으로 연명할 정도로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난 금파는 소리에 재능을

지녔던 아버지의 피를 받아 세상에 나가 소리를 하고 싶었다.

일제가 조선을 삼키고 역병이 창궐하던 뒤숭숭한 시절에 여자 소리꾼의 삶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명창 신채호가 만든 동리정사로

무작정 찾아든 금파. 동리정사의 주인 김세종은 금파의 재능을 알아보았지만

불같은 금파의 열정을 조금쯤은 식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내친다.

 

하지만 금파는 아랑곳 하지 않고 동리정사에서 버틴다. 이미 동리정사에 들어와 있던

남자 승윤과는 인연이 있음을 느꼈지만 이미 약조한 남자가 있어 모른 척 한다.

관기로 들어가 허송세월을 보내던 때, 금파의 재능을 알아본 노인이 그녀를 들이게 되고

평생 다른 남자에게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던 터였다.

하지만 금파의 소리에 대한 열정은 노인에게 머물지 못하게 했고 그녀는 제대로 된

소리를 배우고 세상에 자신을 새기고 싶어 동리정사로 쳐들어온 것이다.

 

당시 연회에서 빠질 수 없는 예인들었지만 늘 가난했고 누군가의 후원이 필요했었다.

돈 많은 노인네의 수작에 맞섰던 금파는 동리정사를 어렵게 만들게 된다.

자신을 억압하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찼던 금파. 어려운 고비마다 승윤이

그녀를 토닥이고 구해낸다. 어렵게 한성에 올라와 국립연회극장 협률사의 무대에

오르지만 남성 중심의 소리판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이미 삼십대의 중반에 접어든 금파는 소리판에서 주역을 맡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소리꾼의 시간들은 이제 저무는 시대가 된다.

돈많은 남자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취하려 하지만 모든 걸 거부하고 그녀만의 길을 가는데..

 

사실 금파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당시 그녀에게 추파를 던졌던 경시총감에 의해 기록이 삭제된 것으로 나오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그저 김천에서 나고 고창 동리정사로 들어왔다는 금파의 일생을 오롯이 살려낸 저자의

글에는 소리를 즐겼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사랑했던 남자 승윤과는 끝내 맺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진정 사랑했던 남자가

있긴 했을까. 그저 꺾으려는 뭍남자들을 물리치고 평생 진정한 사랑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겠다. 저자가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몰랐을 금파의 삶이 지금이라도 빛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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