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25만 부 기념 퍼플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책도 사람처럼 인연이 있어야 만난다고 생각한다.

2021년이 엿새를 남긴 지금 내가 이 책을 만난것은 행운이었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책이라 기대가 컸지만 마치 어려서

가장 크림이 많은 빵의 중간 부분을 아껴 먹었던 것처럼 몇 달전 사놓은

이 책을 바라보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아껴두었었다.

 


 

노라는 죽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수영을 잘했었고 그래서 체육교사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올림픽 메달을 딸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그녀는 그길을 포기했다. 이후 아버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오빠인 조는 밴드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게이였고 알콜중독자였다.

어느 순간부터 조와 노라는 멀어지고 말았다. 그녀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 엄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잘 쳐서 멋진 연주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돈벌이로 레슨을 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밥줄이었던 악기점에서 해고통지까지 들었다. 이제 그녀가 갈 곳은 단 하나. 죽음이었다.

항우울증약으로 버티던 삶을 이제는 끝내야 했다. 그렇게 노라는 하루가 저물어가는 23시22분 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노라는 초록색 책들이 가득한 자정의 라이브러리에 도착한다.

 


 

노라는 도서관에 가려던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오래전 학교 도서관의 사서였던 엘름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다는 자정의 도서관이라니.

노라는 죽음마저도 자신을 거부한 것 같아 분노가 치밀었다.

엘름부인은 도서관에 가득 꽂힌 책이 그녀의 다른 길이었다고 했다.

그녀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 포기했던 어떤 길. 노라는 죽기 전 그 길을 가보기로 한다.

 


 

수영선수가 되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강연을 하기 위해 전세계를 여행하는 삶.

빙하학자가 되어 지구온난화와 환경을 연구하는 연구원.

심지어 어마어마한 락스타가 되어 전세계를 순회하는 대스타의 삶.

와이너리 대표, 때론 아이를 둔 엄마가 되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머무를 뿐 다시

라이브러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잠시 매력적으로 보이던 그런 삶도 그녀에게

행복을 주진 못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했던 프러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났다. 그런데 책 중반에 엘름부인이 바로 그 시를 노라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다. 우리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혹시 그 길을 갔더라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던 노라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 도착한 도서관에서 가보지 못한 삶에 들어가보는 장면은 정말 흥미로웠고 나도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싶었다.

나도 노라처럼 그 많은 길들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살고 싶은 의지를 찾아가는 노라의 여정은 눈물겹다. 그리고 결국 사랑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연말에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다.

소설처럼 저 어마어마한 우주속 어딘가에 내가 여러명 존재하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정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저자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렇게 섬세한 글을 쓰는 남자라니...다음 작품에는 어떤 기적을 선물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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