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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 -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내는 오늘
박상률 지음 / 해냄 / 2021년 11월
평점 :
굳어가는 머리를 운동시키려면 스릴러물이나 미스터리물들이 좋은데 가끔은
쉬어가듯 담백한 산문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예전에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꽃이 피는 봄이 좋았는데 이제는 가을이 좋다.
감성도 나이따라 가는 것인지.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y/hyunho0305/IMG_20211202_115438_HDR.jpg)
처음 저자의 이름을 보고 아 그 사람이로구나 했다.
내가 섬으로 들어와 살게된 인연이 되었던 한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스승이라고 했던가.
일부러 찾아 읽어보았더니 다소 어렵기도 하고 심오하기도 하여 아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이 정도의 필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했다. 근데 그가 쓴 산문집은 어떤 느낌일까.
이 양반 앞으로 작품집이 나올 때마다 첫장에 '박상륭이 아니고 박상률 올시다'라는
서문이라도 올려야 할 모양이다. 나도 '박상륭'인줄 알았다가 이 글이 나오는 책 중반이
넘어서야 다른 작가임을 알았으니 말이다. 저자에게는 독일까 약일까.
반 넘어 살아온 흔적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면접을 보기 위해 새벽열차를 타고 도착한 서울역. 하필 '쉬었다 가세요' 다가온 여자가 어릴적 동무 혜진이었다니...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가난때문에 어려서 서울로 올라온 동무는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던 어미는 딸을 만나기는 했을까. 가난는 자신이 선택한 길도 아니었건만 시든 꽃같은 길을 걸어야 했던 여자의 이야기가 가슴아프다. 그녀 또한 얼마나 놀랐을까.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y/hyunho0305/IMG_20211203_140910.jpg)
날 때부터 약했던 몸으로 허우적 거리며 살아야 했던 남자.
요양을 위해 머물렀던 산사에서 만났던 스님들과의 이야기며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산속에서 요지부동했던 선사들의 비겁함에 일갈하는 그의 말이 묵직하거니와 시원하기도 하다. 과연 종교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가 평소 부처를 흠모하지만 산속에 처박혀 중생의 방문만 기다리는 처지를 한탄했던 기억이 겹쳐진다.
마음속으로 흠모만 하다가 놓쳐버린 사랑들에 대한 이야기며 먼저 세상을 떠난 문우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늦가을에 어울리는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나이쯤에 이르고 보면 이런 추억의 에세이 한 권쯤은 거뜬이 나오겠다.
나도 언젠가 이런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잘하고도 싶고 흠모하는 작가들과의 만남자리에 자주 참석하던 독자였던 내가
어떤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이건 창작일까. 르포일까.
깊은 속사정까지는 모르겠고 그나마 뼈대만 리얼이고 곁가지 정도는 창작이었길 바란다.
그래서 그가 A급이었는지 B급이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나는 C에도 못미치고
D등급의 인간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C정도의 성적표는 받고 싶은데 가능하려나.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