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스위스 바젤 대학교 정교수가 되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35세에 퇴직했다.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등지에서 집필과
사색에 몰두했다. 후대의 의사들은 니체가 뇌종양이나 진행성 핵상 마비 질환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측할만큼 그는 두통, 위통, 구토등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니체는 신체도 정신도 불안정했지만 여덟시간이 넘는 산책을 즐겼다.
그가 고통을 이기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자연속에서 하나가 되어 몰아일체가 되는 경험.
그리고 다가온 특별한 경험이 그를 기쁨에 떨게 했다고 한다. 아마도 명상을 오래하면
느끼는 극치의 순간을 맛보았던게 아닌가 싶다.
내 몸은 이곳에 있지만 혼은 우주 저 밖으로 날아가 만물을 바라보는 그런 경험은 아니었을까.
참선하는 승려가 이르는 경지를 경험한 니체는 '산책이 바로 명상'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경험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는 비로 마당을 쓸다가 누군가는 달빛이 비치는 숲길을 걷다가 몰아일체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 기쁨에 이른다.
아마도 나는 이런 경험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마음으로 선입견 없이 책을
읽다보면 다가오는 떨림같은 것들. 책을 제법 읽었다고는 하나 이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계획적인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명상에서 얻는
극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아', 즉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야 한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경지에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아첨하고 주위에 신경 쓰면서 시류대로 잘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니 나는
그런 의미대로 라면 '어른'이다.
하지만 니체가 경험했던 명상의 극치란 아이의 마음과 같다는 말에 공감한다.
무색무취의 순수한 세계에 들어서는 일.
어른이 되어서는 참 힘든 경지이다. 그래서 선의 경지에 이른 도인들이 자유롭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이들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상가의 일상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마치 득도한 스님의 설법을 들은 듯도 하고 몰아일체를 경험한 철학자 니체와 함께
산책을 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제목이 이랬던 것일까.
언젠가 도달하고픈 경지이지만 아마도 난 닿지 못할 것이다. 잠시 그 경지에 이른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