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개정 증보판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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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답지 않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린 소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티코를 타고 아버지가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돌아야 했던 시간들. 고향과 엄마를 멀리 두고 타도시의 기숙사에서 외로움과 친구가 되야했던 기억들. 부모의 사랑이 함께 해야할 시간들을 아프게 보냈던 글을 보면서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었는데...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왜 억울하게 가족이 되어 아픈 시간들을 보내야 했을까.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늙어가고 있을 아버지를 가끔 떠올리기도 한다지만 그닥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먼 친척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 인연을 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살거였으면 결혼도 하지말고 애도 낳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동생들이 조심스럽게 근황을 전하곤 했다. 그래도 평생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7순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모습을 만났다. 친척도 친구도 없는 초라한 장례식장에 내 손님이라도 보태야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린 글에서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외롭고 그립고 아팠겠구나.

 

 

세상에 산타클로스는 없다고 알아버린 어린소녀가 아직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남동생을 위해 가벼운 저금통을 들고 선물을 사기 위해 달렸을 모습을 떠올리니 코끝이 찡해진다.

이렇게 속이 찬 누나라니. 저도 너무 어린데.

그래서 '인간극장'같은 푸근한 프로그램의 작가도 할 수 있었겠구나. 바람에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인생을 논하겠는가.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친구가 되는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난 남자.

뭔가 있어보이고 미래마저 밝아보이던 그를 자신이 거처하고 있던 한심한 고시원 계단에서 마주치던 모습에서 인생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묻게 된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모인 사이트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던 순간.

나도 언젠가 죽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실제 그렇게 먼저 떠난 동생은 늘 내 가슴속에 남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같은 폭염이라면 태양이 아무리 빛난다고 해도 나서고 싶지 않다.

이런 계절에는 고고한 달빛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조금의 빛만으로도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아직은 희망적이라고.

다행이다. 첫눈에 반한 남자와 부부의 연을 맺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치 상처를 하나씩 봉합하듯 써내려간 글들로 이제는 더 아프지 않을 것도 같아서.

다음엔 멋진 소설로 만나보면 어떨까. 충분히 그럴 재능을 가진 작가라고 기억하겠다.

기억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이름을 가졌잖아. 고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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