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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제목만 보고는 생명을 구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했다.
하지만 자신이 의사이면서 자신의 병을 구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던 의사가
치열한 죽음의 현장에서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국내 최고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될만큼 영특하고 재능많은 남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사실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니 인정하지 않았다.
부부싸움으로 어린 아들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부모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도망치듯 선택했던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보통의 의사생활보다 더 맞았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나 사람없는 세상은 없고
벽은 존재한다. 그 벽을 넘기위해 소통해야하고 이해해야하는데 그런면에서 그는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 환자들에게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과거 소련의 치하에 있던 아르메니아란 나라는 지금도 낯선 곳이다.
가난하고 특히 다제내성 결핵환자가 유독 많은 곳이었던가보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의료체계가 잘 되어있는 곳이고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걸
실감하게 된다. 결핵은 약을 잘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약에 대한 내성 때문에
쉽지 않은 병이라고도 들었다. 결핵은 전염성이 강하고 특히 보수적인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에서는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멀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이 질병을 이기지
못하게 했다. 그런 곳에서 만난 사연 많은 환자들과의 1년은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그 곳에서 만난 자신의 엄마와 같은 나이인 기젤라를 통해 엄마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서서히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늘 서로를 괴롭히던 모자간의 간격은 좁혀질 수 있을까.
밥을 해먹이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기젤라의 모습에서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움츠리게 했던
우울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혀지는 것 같았다.
시리아 난민이 몰려드는 레바논. 폭탄이 터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현장에서도
희망과 기적은 있었다. 하지만 죽음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결국 모두가 파멸뿐인데 말이다.
코로나보다 에볼라가 더 무서운 병일까.
인류는 늘 이런 위기를 맞곤했다. 물론 언젠가 다시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오늘을 또 버티는게 인간이다.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으로 누구보다 가깝게 죽음을 마주보면서 오히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이 아프고 감동스럽다.
책의 처음과 말미에 이제는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는 장면에서 그가 진정으로 다시
치열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아들로서는 실패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이미
좋은 길로 들어섰음을. 코로나 방역의 현장에서 다시 뛰는 그의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우울에게 잠식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남편으로서도 아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느껴졌다. 모두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