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 파드득나물밥과 도라지꽃
구효서 지음 / 해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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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때가 있다. 어려서는 좀더 그랬고 커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TV앞에서 자주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다큐를 보다가도

불쑥불쑥 눈물을 흘린다. 누군가는 그것도 갱년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 울고 싶을 때에는 혼자 울게 된다. 자존심 때문인지 부끄럼 때문인지 모른다.

평창에 있는 에비로드-절대 영국이 아니다-는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그곳의 주인인 난주는 이제 여섯 살이 될락말락하는 유리라는 딸을 키우고 있다.

오래전 서울내기가 되고 싶었던 난주는 결국 서울내기를 포기하고 평창으로 내려와

시골내기로 살기로 결심했다.

 


 

오래전 미국으로 팔려갔던 정자가 늙은 남편 브루스와 함께 에비로드에 잠시 닻을 내렸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정자를 구해주고 아내로 삼은 브루스는 한국을 좋아했다.

브루스의 기억 저편에는 한국에 파병되어 고립되었던 시간이 있다. 본대와 떨어져 헤매던

브루스는 어느 마을에 닿았고 밥과 술을 주었던 착한 주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던 기억이

평생 따라다녔다. 파드득나물이란 이름이 기억저편에서 건너왔고 주민들이 주었던 밥에

파드득나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냈다.

브루스가 머물렀던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브루스는 한참을 울었고 용서를 빌었다.

 


 

여섯 살이 될락말락한 유리에게는 생모가 있었다. 곧 유리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고 난주는

유리와 이별하기 위해 연습을 꽤 했어야했다.

난주의 이웃에 사는 서령은 자신의 작품을 녹음해주었던 아나운서 이륙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지만 결국 울어야 할 일이 생겼다. 누구나 울어야 할 일은 생긴다.

 

강원도 어느 펜션에 울어야 할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는 일은 치유의 일이라고 했다. 나처럼 몰래 울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브루스처럼, 누군가의 옆에서 울고 싶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옆에서 울면 슬픔이 덜할 수 있을까. 인생이란게 그렇다. 울일이 있다가도 다시

웃을 날이 오기도 하더라고. 그러니 죽을 것 같았던 시간들을 잘 견디라고.

 

아주 오랫만에 구효서의 신작을 만났다. 그동안 뭘 했길래 이리 뜸했을까.

저자를 모르고 읽었더라면 여자작가인줄 알았겠다. 결이 곱고 섬세하고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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