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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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국은 아버지의 나라였다. 왕도 허락을 구해야 했고 어느 시대인가는

조공을 바치며 섬기기도 했다. 아무튼 중국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빈번하지는 않았지만 ㄴ수시로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고 문물을 교환하고

정보를 전달했다. 그렇게 오간 사신들도 꽤 많았던 것이다.

 


 

교통이 편한 시절도 아니고 그저 말타고 걷고 그렇게 중국을 오가야 했을 것이다.

이 기록에서 보면 명을 굴복시키고 세운 청나라의 건륭제의 칠순잔치 축하 사절단은

음력 5월25일(양력 6월 27일)에 출발하여 음력 6월24일에 압록강에 닿았다고 한다.

한양에서 국경까지 꼬박 한달이 걸린 셈이고 그 곳에서 베이징에 닿은 것은 음력8월1일

(양력 8월 30일)이다. 꼬박 두달이 걸린 셈이다. 오가는 시간이 넉달이 걸린다는 뜻이다.

 

 

명을 섬기던 조선은 당시 오랑캐족이었던 여진족에게 섬김을 받고 있었다.

후일 후금이라 불렸던 오랑캐들은 조선을 섬기고 조선은 명나라를 섬겼다.

그런 상하관계는 명의 몰락으로 막을 내린다. 조선을 섬기던 후금이 명을 멸하고

청나라를 세운것이다. 이제 상하관계가 바뀐 것이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을 것이고 부모처럼 섬기던 명을 멸한

청에 대한 반감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청은 예전의 오랑캐가 아닌 것을.

 


 

이 책은 정조시대 당시 청의 황제였던 건륭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했던 사신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정이야 말할 것도 없이 고달팠겠지만 어렵게 베이징에 도착하고 보니 건륭은 당시 열하라고 불리던 지금의 청더에 머물고 있었다. 잔치를 열하에서 열겠다고 그곳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다시 열하로 향한다. 그 여정이 후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되었다.

 


 

이 여정에서 놀라운 것은 당시 티벳의 핀첸라마를 만난 것이다. 조선은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멀리하고 있었기에 부처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라마를 만난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금불까지 선물로 받게 되니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이 불상을 건륭이 하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저자는 이 불상이

핀첸에게서 선사받았다고 전한다. 사신일행들은 이 불상을 조선에 가지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왕의 선물을 버릴 수도 없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연히 성균관 유생들은 불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참나 성리학이 조선에서는 그리 중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열하일기'가 여정을 담은 기행문인지 소설인지 아리송한 구석이 있긴 하다.

완전한 픽션은 아니고 박지원의 직접 보고 경험한 것만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료적인 면에서 그 가치는 조금도 감해지지 않는다는 견해에 동감한다.

 

정조의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외교적인 면에서는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에 의례적으로 보냈던 사신 이외에도 가끔 의외의 사신행렬을 중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청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왕의 면을 받고 넉달이상의 여정을 견뎌야 했을 사신들의 고충이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건륭 황제의 칠순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사신들의 여정을 보니 당시 청과 조선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잔치는 어떤 모습이었고 선물로 주고 받은 것들은 무엇인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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