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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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사고가 달라진다. 우리네 삶을 예술로 보는 저자의

시각이 참신하다. 만인의 인문학을 쓰기위해 그는 아마도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으려 했을 것이고 만인의 삶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문학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든 삶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제목이 참 적절하다.

 


 

나처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나이를 계란 두판에

비유하는 장면에서는 그 위트에 무릎을 꿇을 것만 같다.

우회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유머와 위트를 안다는 것이고 인생을 달관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문학은 은유라는 것은 절대적이다. 그 은유가 없는 문학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문학은 아름답고 상상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만나는 오욕칠정의 고뇌를 은유적으로 해석할 수만 있다면 문학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때로 절절하지만 아름답기도 하고 칭송받기도 하는 그런 문학같은.

 


 

동굴벽에 그린 동물그림을 실제 본적은 없다. 그저 그 시대에 주변에 있었던 동물을

그렸나보다 정도만 생각했다. 사진으로 본적이 있는데 아주 잘 그려져서 구석기 시대에

피카소를 능가하는 화가가 있었나 했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법에 접근하는 것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누군가는 사냥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신에게 올리는 제물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쩌면 상상속 동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말이다.

단순히 그림 하나로 우리는 상상의 나래속을 여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허

이게 인문학의 힘이구나 싶다.

 


 

철학자 플라톤이 인간을 아홉 등분해서 분류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하긴 인간은 등급을 매겨 자신이 어떤 등급인지, 소고기 ++급처럼 우월한지

그저그렇다 못해 9등급인지 알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람꼴은 갖추었으되 사람이랄 수 없는 사람'. ㅋ 절묘하다.

1등급은 속보이게도 철학자라고 치고 9등급 꼴찌 인간은 정치독재자라는 말에

제법 잘 분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군부의 탄압은 몇 등급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일까.

플라톤의 혜안에는 못미치지만 9등급의 분류에 속터지게 하는 정치인을 끼워넣으면

들고 일어나려나.

 

만인의 인문학이라는 제목답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물을 인문학적으로

해석을 해놓았다. 고전, 신화, 문학, 경제, 패션...

그중 내 눈을 끌었던 한 줄의 글.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고갱의 유명작품에 그런 제목은 들어본 적이 없어 검색을 통해 그림을 보았다.

인간의 한평생을 그린 그림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고흐와 불화하여 타히티로 떠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묻힌 화가는 좀 괴팍하다고 느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그림 왼쪽에 저렇게 긴 제목의 글을 남기다니.

그도 화가이면서 철학자였구나.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지탱해가는 모든 사람들 역시 철학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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