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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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에 핀 매화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주 오래전 사랑했던 첫사랑같기도 하였다.

한동안 사느라 잊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맹렬하게 잘 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니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내게 그는 질풍노도의 시절 위태로운 내 방황을 잠재웠던 사람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해서 절필을 하고 어딘가로 숨어들었나 했다.

그동안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가 이제는 은퇴하여 숨을 고르고 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그의 재능이 한동안 쓰이지 못해서 퍽이나 안타까웠다.

오래전 소설로만 만났던 그의 삶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서 그동안 무심했던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고 그가 지났을 고단한 시간들이 아팠다.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은 적이 많았다. 실제 나는 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밥도 술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작품으로 만나는 일이 가장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글로 만나는 그가 더 진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의 모습에서 실망을 더 맛봤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만난 쉬운 한자이름을 지닌 '한수산'이 이름만큼이나 정직하게

다가온다. 치열하지는 않지만 여전했고 고요했고 편안했다. 그게 세월의 힘일까.

 


 

그가 여전히 닿고 싶다는 피렌체나 키웨스트, 고갱이 묻혀있다는 히바오아 섬은 한동안

닿기 힘든 곳일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그가 꼭 닿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가 절망했다는 그 시절의 이야기. 나는 그 시간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랬던가. 내가 아직 어려서 몰랐던가. 그 잔인한 시절에 그런 고통이 있었구나. 아팠다.

몇 년동안 머물렀다는 제주 역시 알지 못했고 조국을 한동안 떠나 일본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그런 아픈 사건일줄을 몰랐다. 무심했다.

 


 

딸아이가 자신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속에도 인간이면 모두 겪어야 하는 오욕칠정의

여정과 결국은 잠깐 살다가 떠나는 존재로 태어나게 한 원죄의 아픔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진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엇이관대 함부로 생명을 만들었을까. 자식의 모든 시간을 완전하게 해줄 능력도

없으면서.

반려견 봉봉이와의 일상에서 잠시 미소가 머물렀다. 나도 그랬다. 살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우리집 막내 토리를 통해 알았으니 말이다. 봉봉아 오랫동안 곁에서 위안을 주렴.

 


 

'선생님,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하며 눈물짓는 독자가 바로 내 모습이다.

섬세한 눈을 가져 노후를 사는게 힘들다는 투정을 듣노라니 세월의 무상함이 쓰리다.

하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도 늙었다. 이제 같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의 풋풋했던 시절의 이야기, 딸아이와의 추억들, 지인들과의 일상들이 잔잔히

전해졌다. 특히 스승과의 일화는 더 맘에 와 닿는다. 내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으므로.

그리고 저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스승으로 남길를 바란다.

 

우리가 떠나온 과거의 시간들을 저자와 함께 만났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 한권의 책으로 어찌 그 시간들을 다 이해할까.

하지만 그가 지나왔던 아침과 저녁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웃을 잘 만나야 삶이 편하다. 한 시대를 같이하고 나누고 공감했던 작가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위안도 되었고 꿈도 되었고 행복했다고 전하고 싶다.

건강하시라. 그리고 대작 까지는 아니어도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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