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윤동주의 흔적이 담긴 광양의 정병옥 가옥이 아직 보존되고
있다니 참 다행이다 싶다. 일제에 핍박을 견디고 살아남은 윤동주의 필사 원고가
숨겨졌던 집. 후배였던 정병옥에게 건네진 원고는 가겟집 마루밑에 숨겨져 온전히
살아남았다.
부산이란 도시는 바다의 도시이지만 또한 산의 도시이기도 하다.
바라들 굽어보는 산동네가 뺑 돌려져 있다. 한 때는 무덤이었던 동네였다는
아미동이 이제는 총천연색의 옷을 입고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
대부분의 산동네들이 밀고 깎여서 아파트들이 들어서던데 이곳은 비루했던
몸을 잘 치장해서 살아남았다.
오래전 일본인들이 엄청난 생선을 실어내갔다는 이 섬에도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객선이 닿는 고도에는 적산가옥 골목이 있다. 뼈대는 대체로
남아있고 외부와 내부의 구조들은 많이 변했지만 한 때 일본인들이 점령했던
시간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처럼 살아남은 집들에는 역사가 숨쉬고 있다.
길모퉁이 오래된 집앞에 발길이 머무는 이유는 그 집에 살다간 이들의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층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선다 해도 이런 집들은
좀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지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추억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살아가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재산으로 더 기억되므로.
오래된 포구의 염전에서부터 박경리선생의 원주집, 멋들어지게 남은 한옥의 마당에서
잠시 역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