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오래된 집 - 근대건축에 깃든 우리 이야기
최예선 지음 / 샘터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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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류가 살아온 역사를 품은 공간이다. 인간처럼 시대를 따라 진화했고 퇴화했다.

한 때 동굴이 집이었던 시대도 있었고 초가를 얹는 집이 무수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오래된 집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사람처럼 집도 어느 순간 태어났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따라 도시로 몰려들었고 한 때는 한적한 공간이었던 땅에는 오래된

집들이 무너지고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콘크리드 구조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제 어디에서도 땅을 밟아보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땅의 기운을 받고 살아야 건강에 좋다는데 수명은 늘어났는데 마음의 풍요는

사라진 것만 같다.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니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려서는 한옥이 살기 불편한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한옥의 느긋함에 끌린다.

곡선으로 이어진 지붕의 모습도 좋고 하늘의 빛을 그대로 들여놓는 구조도 좋다.

조그맣다 해도 마당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누군가는 한옥에서 자고나면 개운하다고

했다. 이제 나무를 때는 구들이 귀한 시절이라 이 섬에 들어와 집을 지을 때에도

아랫채는 구들을 놓았다. 빈집 곁에 돌담근처에 버려진 구들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불을 때고 있노라면 모든 시름이 잊혀지는 것 같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종가의 종부가 그랬다던가.

"집은 사람이 살아야 해. 그래야 망가지지 않아."

정말 그랬다. 이제는 더 이상 홀로 살 수가 없어 자식들이 있는 도시로 떠난

빈집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사람의 온기로 버티고 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오래된 고택을 들러보게 된다.

오래전 누군가 두고간 이야기들을 들리는 것만 같아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윤동주의 흔적이 담긴 광양의 정병옥 가옥이 아직 보존되고

있다니 참 다행이다 싶다. 일제에 핍박을 견디고 살아남은 윤동주의 필사 원고가

숨겨졌던 집. 후배였던 정병옥에게 건네진 원고는 가겟집 마루밑에 숨겨져 온전히

살아남았다.

 

부산이란 도시는 바다의 도시이지만 또한 산의 도시이기도 하다.

바라들 굽어보는 산동네가 뺑 돌려져 있다. 한 때는 무덤이었던 동네였다는

아미동이 이제는 총천연색의 옷을 입고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

대부분의 산동네들이 밀고 깎여서 아파트들이 들어서던데 이곳은 비루했던

몸을 잘 치장해서 살아남았다.

 

오래전 일본인들이 엄청난 생선을 실어내갔다는 이 섬에도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객선이 닿는 고도에는 적산가옥 골목이 있다. 뼈대는 대체로

남아있고 외부와 내부의 구조들은 많이 변했지만 한 때 일본인들이 점령했던

시간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처럼 살아남은 집들에는 역사가 숨쉬고 있다.

길모퉁이 오래된 집앞에 발길이 머무는 이유는 그 집에 살다간 이들의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층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선다 해도 이런 집들은

좀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지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추억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살아가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재산으로 더 기억되므로.

오래된 포구의 염전에서부터 박경리선생의 원주집, 멋들어지게 남은 한옥의 마당에서

잠시 역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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