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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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완벽해 보이는 배우다. 사실 그녀가 해온 연기를 보면 흠없이 깔끔하다.

딱 그녀의 성격같이 그런 모습의 연기.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오래전 그녀를

만났던 지인은 편하게 대하기가 좀 어렵더라고 했다.

말은 없는 편이고 누구에겐가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쓰이는게 싫다고 했단다.

그런 그녀가 두 번째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비슷한 시간을 달려온 그녀는 나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여배우로 인정받았고 아주 오랫동안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알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소명의식없이 하기 힘든 일들이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당신을 대신해서 해줄 일이 많다는 걸 알고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아낌없이 내어주는 삶을 살아왔기에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함부로

따라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책을 낸 것은 아닐까.

 


 

주어진 소명대로 살아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내 삶은 어떤 그릇에 담겨 어떤 모양으로 살아왔을까.

힘이 다한 어느 날, 재활용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에 회한의 시간들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 정도라면 재활용의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걸어온 길들에 수많은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해

보인다. 언제든 그녀는 비굴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런 이미지로 자신의 상처를 걱정하기

보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했다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엄마가 살아계신다.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카셋트 라디오에 쓰여진 엄마의 글씨를 보면서 불쑥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엄마는 그런 존재다. 누군가 엄마가 돌아간 후에 냉장고에서 엄마표

김치를 발견하고 냉동실로 옮겨 보고싶을 때 마다 꺼내봤다고 하더니.

삶을 되감고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인간은 결코 겸손해지지 않을 것이다.

 


 

채우지 않아도 절로 채워지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건 비워내야 가능한 일이다.

그녀 역시 지는 해를 보면서 저런 생각을 했구나.

이제 남은 삶은 비우기를 잘해야겠구나.

 

밝은 해처럼 찬란하게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부드럽게 기우는 모습조차 아름답다고.

오래오래 주변을 너무 뜨겁지 않지만 온화하게 비춰달라고 응석부리고 싶다.

잔잔하고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그녀같은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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