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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어려서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중에는 과자종합선물셋트가 있었다.
당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과자들을 모아놓은 선물셋트였는데 이거 하나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늙어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 내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으면 '건강'같은 무형의
선물도 좋지만 책이 가득 든 상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바로 이 에픽이란 책이 그런 선물같은 책이었다.
소설책도 아닌 것이 잡지라고 생각하면 될까? 처음 '에픽'이란 책을 마주보며 든 생각이다.
일반 잡지와는 사뭇 다르고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계간지 형태로만 보면 무척 세련되었다.
파트별로 주제가 다른데 누군가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진 에세이와 인터뷰 기사.
그리고 소설같은 작품들이 실려있다.
수제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는데 그런 책 나도 만들고 싶다.
책을 만들 작품을 먼저 써야겠지만 말이다.
남궁인의 '응급실의 노동자'는 너무 리얼해서 마치 내가 응급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병원갈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사실 얼마 전 남편의 급박한 발병으로 한밤중 응급실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다행히 그 응급실은 다리 골절된 환자와 우리가 전부여서 조용했지만
TV드라마에서 그려진 응급실의 모습은 소란스럽고 무서웠다.
그런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청소하는 사람들까지 생생한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희망을 얹는다.
그럼에도 난 내 아이들이 '의사'나 '간호사'가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가장 힘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은 사명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다 너무 힘들걸 알기 때문이었다.
실린 소설들도 꽤 알차다. 제네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그린 이 프롬 제네바도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오래전 베트남으로 갔던 남자들이 대책없이 낳아놓은 라이따이한.
참 부끄럽고 가슴아픈 역사가 숨어있었다.
이렇게 푸짐함에도 불구하고 구독료가 너무 저렴해서 놀랐다.
종이값을 되려나.
사실 오래전에는 많은 계간지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만나기가 어렵다.
이익을 위해서라기 보다 사명감 같은 열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맘먹기 쉽지 않았을 탄생.
오래 오래 독자들을 만나고 독자들도 닫힌 마음과 지갑을 열었으면 한다.
'에픽'의 원뜻인 너와 나, 혹은 세계와 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 책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