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 후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영혼이 껍데기만 남은 나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에 코웃음을 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난 현재 머무르고 있는 이 공간과 이 육체는 임시보호소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잭과 엄마 앤, 그리고 엄마의 절친인 밥과 캐런의 가족들은 그저 즐거운 여행을

기획했을 뿐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빅베어!

캠핑카는 아빠가 운전을 했고 핀은 아빠 곁에 앉았다. 그리고 열 세살 남동생 오즈와 반려견

빙고, 언니 클로이와 남자친구인 밴스. 밥과 캐런 그리고 그들의 딸인 내털리.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내 친구 모. 이렇게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길 중간에서

차가 고장나 움직이지 못하는 카일을 만나 태워주었다. 그리고 아빠 잭은 사슴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꺾었고 차는 벼랑길아래로 전복되었다. 그리고 나 핀은 죽었다.

 

                              

차는 옆으로 누었고 창문을 깨져서 폭풍우를 막아주지 못했다. 나 핀은 머리가 잘려 죽었고

아빠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죽는 순간 나 핀은 아마도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 처럼

모든 것을 지켜보는 영혼이 되었다. 가장 용감했던 사람은 엄마 앤이었다. 앤은 맨손으로

깨진 창문을 눈으로 막고 도중에 차를 태워주었던 카일과 함께 구조를 위해 폭풍우속으로

나갔다. 지적 장애가 있던 오즈는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리고 부상이 심한 아빠는 정신을

잃은 상태다. 판단력이 흐려진 밴스는 탈출하겠다고 밖으로 향하고 언니 클로이는 밴스와

쫒아 나간다. 차에 남은 밥은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캐론과 내털리는 쇼크상태이다.

 

                            

엄마와 카일은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 제대로 된지 알지도 못한 채 폭풍우속을 걸어 결국

구조대와 연락이 된다. 클로이는 추위에 무너져 쓰러지고 밴스는 그런 클로이를 놔둔채

혼자 탈출을 감행한다. 차안에 있던 나의 영웅 모는 가방을 뒤져 라이터를 찾아 눈을 녹여

물을 만든 후 남은 사람들에게 차례를 물을 먹인다.

오즈는 반려견 빙고에게 물을 먹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그런 오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

밥은 크래커 두 봉지와 오즈의 장갑을 바꾼 후 오즈가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하자 그대로

보내고 자신만 차에 다시 오른다. 그렇게 오즈는 눈속에서 실종된다.

 

                         

사람들은 어쨌든 구조되었다. 동상이 걸린 귀와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냈지만 어쨌든 살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고통이 시작된다.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는 아빠 잭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두 아이를 잃은 엄마는 고통을 잊고자 달린다. 매일.

자신을 두고 떠난 밴스 때문에 남몰래 죽을 약을 모으는 클로이. 오즈의 장갑을 뺏고 방치했던

밥은 비밀을 묻은 채 엄마 앤의 곁에서 그녀를 위로한다. 나 핀의 영혼은 밥에게 증오심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지혜로웠던 모가 사건 하나하나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아빠 잭은 죄책감과 마약으로 쩌든 밴스를 일으켜 빅베어로 떠나 오즈를

찾기 위해 수색을 시작한다. 엄마의 절친이었던 캐런은 이제 엄마의 절친이 되지 못한다.

 

이 소설은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별의 예감조차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과

절친인 모와의 추억들.

각자의 방법으로 고통을 이겨내려 애쓰지만 서서히 무너져가는 삶을 그린다.

하지만 영혼인 핀은 간절히 원한다.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감춰져있던 본능대로 움직이게

된다. 어린 아이의 장갑을 빼앗아 자신의 딸에게 건넨 밥에게 돌을 던져야 할까.

죽은 딸의 옷을 벗겨 핀의 절친인 모에게 건넸던 앤의 행동을 보면서 캐런은 절망감을 느낀다.

너는 내 절친이잖아. 그 옷은 내 딸 내털리에게 건네줘야 하는거 아니었어?

이렇듯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선택한 일들이 누구에겐가 깊은 상처가 되어 할퀴기도 한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었다.

그 속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의 본성을 잘 그린 소설이라니...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