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사랑
정찬주 지음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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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우리가 번영된 이 땅에 살기까지 앞서간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선택한 땅은 아니지만 어쨌든 반도 끝 조그만 땅을 가진 나라에 태어나 수많은 외세에

시달렸던 민족치고는 제나라 말도 있고 적어도 어떤 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대단한 민족이지 않은가. 이런 나라게 되기 까지 앞서간 수많은 선조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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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의 역사중에 우리말을 만든 세종과 조선의 빛이 거의 꺼져갈 무렵 최후의 빛을

발하던 시대에 왕이었던 정조를 가장 존경하는데 적어도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비의 죽음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던 정조는 워커홀릭

이었다고도 하고 다혈질이라고도 한다. 그런 정조가 총애했던 정약용!

그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현세에 있다면 그의 업적은 좀 더 빛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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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두물머리 근처에서 태어나 왕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많은 시간을 유배로 보내야 했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지리멸멸했고 그나마 잠시 영,정조 시대에 누그러진듯도 했지만 정조 승하 이후

다시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 와중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고 천주교를 믿었던 정약용의 집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그 와중에 끌려갔던 정약용은 배교를 선택하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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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여년 머물렀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오히려 그에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계기가 된다.

그의 주옥같은 저서들이 그 시절 탄생되었다. 당시 유배생활은 그야말로 모든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알다시피 정약용은 강진의 주막할미가 아니었다면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었던 한 여자!

홍임모로 알려진 그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어쨌든 50이란 나이에 늦둥이 딸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여자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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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생활중 만난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딸을 낳았지만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정약용은

끝내 그 모녀를 돌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겠지만 다시 조정에 들지

못하고 빈한한 처지에 놓였던 정약용의 힘이 강진에 까지 이르지 못했음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홍임과 그의 모친이 절에 의지하는 것으로 그렸지만 어떤 생을 살았는지는 알수 없다.

 

정약용의 학문과 사람됨에 매료되어 다산초당에 모여든 제자들이 이야기와 선승들과의 인연.

그가 '다산'이라고 호를 지을만큼 사랑했던 차 이야기.

저자는 정약용의 배교에 대한 이야기가 늘 가슴에 걸렸다고 한다.

과연 정약용의 배교는 지탄받아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순교도 의미가 있겠지만 정약용의 선택은 그가 남긴 저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아남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그의 선택에 가장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본인이기에

그 댓가는 이미 치뤘다고 생각한다.

거중기를 만들고 수원화성을 쌓아올린 과학도로서의 정약용의 능력은 정말 아깝기만 하다.

다만 학자로서의 정약용을 떠나 잠시 유배지의 외로운 남자로 생각하면 그의 곁을 지켜준

여자의 존재가 감사하다. 그가 강진 땅에서 남긴 업적은 그녀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했지만 그를 욕할 수 없는 것처럼 정약용의 배교도 그렇다.

다만 힘이 미치지 못하여 강진의 모녀를 거두지 못함은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역시 그에 대한 댓가도 그의 몫으로 짊어지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시대에 태어나 좀더 큰 능력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운 천재의 일생에 잠시 마음이 숭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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